서론
1장 중화혁명당 창당과 [혁명방략]
2장 손문과 오사사건
3장 [혁명방략]과 제국주의
4장 [혁명방략]과 민중운동
5장 [혁명방략]의 전개: 토원전쟁
6장 [혁명방략]의 굴절: 호법
7장 손단동맹
8장 반직삼각동맹
9장 소련의 초기 손문 인식
10장 서북
11장 국공합작으로 가는 길: 손문, 오패부, 요페
12장 손문-요페 연합선언
13장 소련의 원조
14장 손문과 마링의 충돌
15장[11월 개조]
16장 [11월 개조]와 [1월 개조]
17장 장개석의 소련 방문과 코민테른의 [결의]
18장 [1월 개조]로의 이행: 보로딘
19장 [1월 개조]로의 이행: 손문
20장 재정통일과 객군
21장 정식정부
22장 북벌
23장 마지막 시도: 국민회의, 일본 방문
결론
신화를 넘어, 손문 연구의 본령을 고찰한다
일본의 한 연구자(野澤豊가 손문의 국민회의 개최 주장을 ‘민중의 소리’를 반영한 ‘중국 국민혁명의 연원’으로 평가한 이후, ‘국민회의’는 손문 혁명의 중요한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게다가 중국 혁명에 대한 ‘기대’가 문화대혁명으로 무너지자, ‘억압의 대륙’이나 ‘반공의 대만’이 아닌 새로운 출로를 찾는 과정에서 즉 ‘좌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대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손문이 떠올랐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손문 신화’는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손문 사후에 국민당 정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손문 연구에는 여전히 ‘신화’적 모습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국부’로서 흠잡을 데 없는 혁명가 혹은 ‘사상적 변화’를 거쳐 좌우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혁명가라는 전제 아래 이루어지는 손문 연구는 ‘신화’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몇 마디 언설이나 몇 가지 정치 행위로 손문의 혁명을 폄하해버리는 것 역시, 평가의 결과는 반대일지라도 그 연구 구조는 같다고도 말한다. 기존 연구의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 혁명가 손문에 대한 평가보다 손문 연구의 공백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저자는, ‘손문은 국공합작을 왜, 어떻게 진행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역사학 본연 정신인 ‘실사구시’에 입각해 신해혁명 이후의 토원전쟁, 호법, 오사운동(제국주의, 민중운동에 대한 대응, 소련과의 접근, 손단동맹, 반직삼각동맹, 북벌, 혁명정부의 수립, 국공합작 등 손문 혁명의 전 과정을 23장에 걸쳐 고찰했다.
10년의 세월로 세운, 손문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
혁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지도자의 역할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으나, 혁명의 목표나 전략을 지도자가 전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문의 경우는 ‘손문의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2차 혁명에 실패하고 중화혁명당을 조직한 뒤로는, 그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졌다.
신해혁명 후 혁명당을 해체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