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제1장 영국공사관을 찾아온 조선인 역관
1. ‘기묘한 희망’
2. 조일수호조규 체결 과정에서의 암약(暗躍
3. 비밀결사 개화당의 기원
제2장 이동인의 밀파
1. 오쿠무라 엔신
2. 첫 번째 도일(渡日
3. 하나부사 요시모토와의 밀담: 「동인문서」
4. 어니스트 M. 사토
5. 수신사 김홍집
6. 귀국과 두 번째 도일(渡日
7. 실종
8. 이용희의 「동인승의 행적」
제3장 김옥균의 첫 번째 일본 방문
1. 출국 과정
2. 후쿠자와 유키치와의 만남
3. 귀국과 임오군란의 발발
제4장 김옥균의 두 번째 일본 방문
1. 군권과 신권의 갈등
2. 기무처 설치의 의미
3. 수신사 활동과 고종의 밀명
4. 독립 승인 운동
5. 제2차 조영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제5장 묄렌도르프의 고빙과 개화당의 군대 양성
1. 개화당의 새로운 계획
2. 묄렌도르프의 고빙(雇聘
3. 당오전과 차관
4. 개화당의 군대 양성
5. 갑신정변 당시의 군사적 상황
제6장 김옥균의 세 번째 일본 방문
1. 차관교섭의 실패
2. 고토 쇼지로와의 공모
3. 후쿠자와 유키치의 갑신정변 간여
제7장 갑신정변에 관한 몇 가지 문제
1. 다케조에 신이치로 일본공사의 갑신정변 개입
2. ‘일사래위’ 교지의 위조
3. 『갑신일록』의 저술 배경
4. 개화의 의미
5. 흥선대원군에 대한 개화당의 인식
제8장 결론
부록
1 오경석과 메이어스의 회견기록
2 『메이지 17년 조선경성변란의 시말(明治十七年朝鮮京城變亂の始末』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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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김옥균과 박영효를 중심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집단을 ‘개화당’이라고 부르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개화당을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밀결사였던 만큼 원래 이들에겐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이름이 없었다. ‘개화당’은 1880년과 1881년 사이에 일본의 언론과 외무당국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개화당의 영수 김옥균이 ‘개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884년 5월 일본에서 귀국한 후로, 이는 차관교섭에 실패한 후 일본 현지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및 고토 쇼지로와 갑신정변을 공모한 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책...
흔히 김옥균과 박영효를 중심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집단을 ‘개화당’이라고 부르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개화당을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밀결사였던 만큼 원래 이들에겐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이름이 없었다. ‘개화당’은 1880년과 1881년 사이에 일본의 언론과 외무당국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개화당의 영수 김옥균이 ‘개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884년 5월 일본에서 귀국한 후로, 이는 차관교섭에 실패한 후 일본 현지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및 고토 쇼지로와 갑신정변을 공모한 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이 ‘개화당’이 외국의 힘을 빌려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지향한 비밀결사였다는 전제 아래, 김옥균?박영효의 지시로 이동인이 일본에 밀파된 1879년부터 갑신정변이 발발한 1884년까지 개화당이 펼친 비밀외교의 실상을 규명하고 있다. 비밀외교란 일반적으로 대중의 눈을 피해 은밀한 형태로 이뤄지는 외교교섭을 의미하는데, 이 책에서는 개화당이 정부의 공식명령이나 국왕의 밀명을 받아서 외국에 출사했으면서도 그 이면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밀히 비밀교섭을 추진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비록 5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개화당이 획책했던 복잡다단한 비밀외교는 이 결사의 목적이 처음부터 정권의 장악 및 조선사회의 근본적 혁신, 특히 신분제 개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