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글을 시작하며_ 4
1. 출생과 성장
미리벌의 정기 받고 태어난 ‘작은 용’_ 14
소년기의 항일 의기 형성과 표출_ 20
학업과 혼인과 비밀결사 활동_ 23
2. 청년기의 선구적 항일투쟁
밀양의 독립만세 시위?를 기획하고 이끌다_ 31
초보적 항일선전공작 경험을 갖다_ 36
만주로 나가서 의열단 창립에 참여하다_ 39
국내 특공거사의 결사대원으로 나서다_ 43
법정과 감옥에서도 항일 기개를 떨치다_ 48
3. 재향 민족운동 참여와 항일언론의 봉화
돌아온 사자, 청년운동 참여로 첫발을 내딛다_ 55
밀양 신간회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_ 58
언론 분야에서 맹렬 항일의 봉화를 올리다_ 64
중외일보와 ‘경남주식회사’ 경영 참여:절반의 수수께끼_ 67
4. 중국행 망명과 민족혁명 기반 구축에의 헌신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으로 복귀하다_ 74
민족혁명의 미래간부 육성에 전념하다_ 81
대일결전 대비 민중조직 공작을 지도하다_ 92
5. 민족혁명당에서의 맹활약
대일전선 통일을 추동하여 민족혁명당을 창립해내다_ 96
민족혁명당의 훈련책임자와 조직가·이론가로 활약하다_ 101
통일전선 논리와 운동현실 사이에서_ 109
6. 한중연합 항일운동과 조선의용대 활동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항일공작을 진두지휘하다_ 114
중국 군관학교에서 한인 청년투사들을 조련하다_ 122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한중연합 항일전선에 서다_ 127
포로 교도공작의 대성공과 전선 재통일운동의 실패_ 138
7. 화북전선에서의 분투와 장렬한 최후
무장화와 적후공작을 위해 의용대의 화북행을 추진하다_ 146
황하를 건너 태항산 항일근거지로 들어가다_ 156
화북전선에서의 석정과 조선의용대의 분투_ 162
태항산 항일전장에서의 장렬한 최후_ 174
8. 순국 희생 후의 일들
석정의 순국일 문제_ 181
추도와 장묘_ 184
두고 간 사람들_ 189
한·중 연대의 기념과 유산_ 194
9. 석정 윤세주, 불멸의 공적과 인간상
윤세
출판사 서평
의열단에서 민족혁명당으로 다시 조선의용대로, 전투적 독립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인물
빼어난 혁명이론가, 항일전선 최선봉의 지휘전사, 신념과 실천의 합일로써 의열정신을 구현해낸 민족운동가
“?우리의 제1차 계획은 불행히도 파괴되고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어 처벌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최후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
2011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석정 윤세주 어록비가 세워졌다. 당당무비의 웅변으로 분출되던 정의의 기백과 불굴의 투혼이 꼭 90년 만에 그대로 ...
의열단에서 민족혁명당으로 다시 조선의용대로, 전투적 독립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인물
빼어난 혁명이론가, 항일전선 최선봉의 지휘전사, 신념과 실천의 합일로써 의열정신을 구현해낸 민족운동가
“우리의 제1차 계획은 불행히도 파괴되고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어 처벌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최후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
2011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석정 윤세주 어록비가 세워졌다. 당당무비의 웅변으로 분출되던 정의의 기백과 불굴의 투혼이 꼭 90년 만에 그대로 되살아나는 듯 했다.
윤세주는 10대 소싯적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후의 결전’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듯 항일독립투쟁의 길을 걸어갔다. 1920년대 이래로 독립운동 진영의 숙원이던 유일당적 대동단결체로서 민족혁명당을 탄생시킨 산파였고, 그 연장선에서 탁월한 조직가에 능란한 조정자 역할까지 책임지고 수행하였다. 넓게 열린 시야와 치밀한 논리로 뒷받침된 글들을 명징한 필치로 당내 최고의 이론가이자 신뢰받는 선전책임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의열단 운동사 17년의 시작과 끝을 약산 김원봉과 함께 열고 닫은 역전의 용장으로서 그 감투정신의 화신이었다. 선후 연결된 운동행로 속에서 그는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가 각각 설립·운영했던 간부훈련기관에서 적어도 200명 이상의 한인청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