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중에서
요동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여순(旅順은 예로부터 발해를 건너 산동반도 지역으로 건너가거나 거꾸로 산동반도나 한반도의 서해 방면에서 만주지역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특히 산동반도로 건너가게 되면 이른바 중국의 강남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충지이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이 지역에는 구석기 이후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전기 신석기인 쌍타자 1기문화(雙?子1期文化부터 후기 청동기시대인 쌍타자 3기문화까지 계속하여 이어져 있고, 그 후에도 차이나계 및 고구려를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목양성(牧羊城 유적을 대표로 하여, 비자와(?子窩, 강상(崗上, 누상(樓上, 후목성역(後牧城驛, 영성자(營城子, 고구려 석성 등등이 그것이다.
근대에 접어들면 이 지역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 시작하여 1800년대 후반 러시아가 남진하자 주변국의 각축을 불러일으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지휘 아래 러시아군을 제압하고 마침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결과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잃었고 일본은 만주와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러일 전쟁은 근대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과 만주지역 침략에 이어지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만주지역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목양성에 관한 조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목양성 유적은 요동반도의 최남단인 여순의 서쪽에 위치한다. 노철산(老鐵山 서북 기슭의 구만(鳩灣에 조가탄(?家?과 유가탄(劉家? 두 마을이 있는데, 그 동쪽 구릉에 둘러싸인 포구 지역이다. 이곳은 발해와 요동만을 가르는 중심점이 되기도 한 지역으로, 이 노철산의 동쪽은 요동만이 되고, 서쪽은 발해가 되는 것이다. 남으로는 바로 장산군도(長山郡島를 지나면 산동반도뿐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