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는 생성과 소멸의 변주곡이 울려 퍼지는 곳
이야기가 있으려면 해프닝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전개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많은 이의 삶처럼. …… 다른 동물도 그럴까? 그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단조로운 일과에 시달리는 것일까?―본문에서
이 책은 ‘나’라는 인물이 영상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가 ‘장’이라는 축으로, ‘나’가 듣는 습지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가 ‘무대’라는 축으로 교차 배치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총 24개의 장과 무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나’가 ?반쯤 잠긴 무대?를 들으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경험하고, 그것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영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현재는 부업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도시에 사는 도시 부적응자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세상으로 나와서 모든 것이 짜여 있는 연결망에 접어들었다가,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해프닝이랄 것 없이 하루를 마치는 도시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되풀이하며 권태를 느낀다. 게다가 부업을 해 가며 만든 영상마저도 다수는 세상에 내놓을 이유가 없게 느껴진다고 ‘나’는 말한다.
그런 ‘나’가 어느 날 인터넷을 헤매다 우연히 ?반쯤 잠긴 무대?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마침 한 환경 단체로부터 영상 제작을 의뢰받는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이용할 ‘생태 통로’를 주제로 하는 홍보 영상이다. 처음에 ‘나’는 이 일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한 세상 곳곳을 연결하는 것으로만 보이던 인간의 도로가 두꺼비나 개구리에게는 차단과 죽음을 뜻한다는 모순을 깨달으며 내면에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이 책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도시인이자 창작자로서 ‘나’의 내면에 생겨나는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한편, ‘나’의 시선을 통해서 도시의 광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물과 흙이 빚어 내는 역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