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우리나라의 대표 한옥단지, 가회동과 건축왕 정세권
우리나라의 대표 한옥단지, 가회동 | 건축왕이자 민족운동가, 정세권 | 정세권은 왜 한옥에 주목했나 | 정세권의 브랜드 주택, 건양주택 | 20세기 한옥박물관, 가회동 31번지와 33번지 |
중당식 주택과 중정식 주택의 결합 실험 | ㄷ자 표준형 주택 실험 | 다양한 형태의 주택 실험 | 가회동 사람들 | 가회동 한옥단지의 가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촌의 서양식 주택
북촌은 한옥마을이 아니다 | 조선인 상류층 우종관과 문화주택 | 서양식 이층집, 문화주택에 대한 환상과 열기 | 우종관이 지은 두 동의 서양식 주택 | 서양식 주택을 향하여 | 일본식 중복도형 평면 | 그래도 온돌은 못 버려 | 조선인 상류층의 ‘삼중생활’
서울의 중심, 인사동 일대의 변화와 박길룡의 조선 주택개량운동
서울의 중심, 인사동 일대 | 일제강점기 인사들의 주택 개량에 대한 고민 | 박길룡과 과학운동 | 조선 주택 조사와 문제점 인식 | 조선가옥건축연구회의 설치와 주택개량운동 | 문화주택 비판 | 중정식 배치냐, 집중형 배치냐 | 부엌의 개량 | 온돌의 개량 | 변소를 비롯한 기타 개량 |
박길룡 조선 주택 개량의 종합안 | 박길룡 조선 주택 개량안의 실제, 민병옥 가옥과 각심재
다이너마이트로 만든 삼청동 주택지와 김종량의 하이브리드 실험주택
신성하고도 수려한 동네, 삼청동 | 다이너마이트로 만든 주택지, 갈등과 대립 | 건축가이자 정치가, 언론인 김종량 | 초기 실험작, 혜화동 주택 | 김종량의 대표작, 삼청동의 하이브리드 주택
이상적 건강주택지, 후암동
조선인의 가회동 vs. 일본인의 후암동 | 건강한 주택지를 찾아서 | 조선인의 후암동에서 일본인의 삼판통으로 | 농사짓던 땅이 경성 최고가의 고급 주택지로 | 후암동 주택지 개발의 시작, 조선은행 사택지 | 경성의 3대 주택지, 학강 주택지 | 그외 주택지 개발 | 후암동의 문화주택 |
서양식 주택으로 보이도록 | 일본식
이상적인 주택지
책의 표지 이미지를 보자. 19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개발된 신정대 주택지(현 후암동 358번지 일대의 분양공고 전단지 그림이다. 아랫부분에 크게 표기되어있는 “이상적 건강지(理想的 健康地” 글자가 먼저 눈에 보인다. 전체 그림의 가운데에는 곧게 뻗은 도로와 격자형으로 잘 구획된 땅이 있다. 도로에는 자동차도 있다.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넓고 곧게 잘 포장한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격자형으로 구획된 땅에는 학교와 같은 생활편의시설과 함께 다양한 모양의 집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집 사이에는 나무를 심어 전원생활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전원의 이미지는 배경에 넓게 표시되어있는 남산의 녹지로 연결된다. 등산로 입구에는 ‘신정대약수온천예정지’ 표기와 함께 온천 시설도 표시되어있다.
1920년대 무렵부터 경성에는 많은 주택지가 개발되었다. 다이너마아트로 돌산을 해체하고 주택지로 만든 삼청동, 이상적 건강 주택지로 인기 있었던 후임동, 한양도성을 훼철하고 만든 교외 주택지인 장충동, 당시 대표적 전원주택지였던 신당동, 경성의 학교촌으로 교수와 의사가 많이 거주했던 동숭동, 한강 너머 이상향으로 그려지던 흑석동, 아파트를 비롯한 최신 주택이 즐비했던 충정로 등. 대부분 먼 곳을 조망할 수 있고 공기가 맑은 높은 지대, 주변에 녹지가 있는 곳, 교육·의료·문화시설과 같은 생활편의시설을 갖추고 버스나 전차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당시 경성에서 인기 있던 주택가가 있던 동네들이다. 개발자들은 주택지에 별도의 브랜드를 붙이고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하고 분양 팸플릿을 배포하는가 하면 기자 설명회도 열어 이상적인 주택지로 선전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경성의 3대 주택지로 꼽히던 곳이 있었는데, 1925년, 1927년, 1928년 3차례에 걸쳐 삼판통(현재 후암동 일대에 개발된 학강 주택지, 1927년 장충동 일대에 개발된 소화원 주택지, 1928년, 1930년, 1934년 3차례에 걸쳐 죽첨정(현 충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