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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한국고대사 사료로서의 제왕운기
저자 (사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출판사 세창출판사
출판일 2019-11-27
정가 26,000원
ISBN 978898411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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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1부 이승휴의 사상과 문학

동안 이승휴 선생의 불교인식과 간장사(看藏寺 17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이승휴 『제왕운기』의 고구려·발해 인식 49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응제시(應製詩의 관점에서 살펴본 『제왕운기(帝王韻紀』와 이승휴(李承休의 역사인식 85
강석근(성결대학교 객원교수

2부 한국고대사 사료(史料로서의 『제왕운기(帝王韻紀』

한국고대사 사료(史料로서의 『제왕운기(帝王韻紀』 119
신종원(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수록된 ‘천왕(天王’의 성격 151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인용된 설화의 성격 187
이창식(세명대학교 교수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불교 ―불교 관련 용어를 중심으로 227
조경철(연세대학교 객원교수

부록 『제왕운기(帝王韻紀』의 산실(産室, 천은사(天恩寺의 역사(歷史와 이승휴 261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책 속에서

「고기(古記」[『삼국유사』]는 단군의 일천여(一千餘 생애를 언급하면서 정작 단군 자신의 결혼 관계나 후사(後嗣에 대한 언급은 없이 대단원을 맺고 있다. 이에 비하여 「단군본기」[『제왕운기』]는 단군사적만을 기술한 「고기」보다 그 서술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러므로 본래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고기」가 있고, 이와는 별도의 「동명본기」[『제왕운기』]가 있으며, 이들을 아울러 하나의 계통으로 세워 본 것이 「단군본기」라 하겠다. _35쪽

‘전려(前麗’라는 표현은 곧 ‘후려(後麗’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전조선기」와 「후조선기」의 존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당 고종은 ‘전려’인 고구려를 멸망시킴으로써 『제왕운기』에서 표현한 ‘전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동국의 정통을 단절시킨 자가 되는 것이고, 그 뒤를 이은 당의 측천무후는 ‘후려’를 배태 또는 ‘복국(復國’시켜 동국의 역사를 잇게 한 주체라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이승휴의 역사관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_64쪽

이승휴 스스로 이때를 성대(聖代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대기」를 바라보는 이승휴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정신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의식으로 두보(杜甫가 말한 자신의 “임금을 요순보다 훌륭한 성군이 되게 하고,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한다(致君堯舜上 再使風俗淳”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사대부는 언제나 자신이 모시던 임금을 요·순임금보다 더 대단한 임금으로 칭송해 왔다. 「금대기」는 바로 이러한 사대부의식의 충실한 산물인 것이다. _108쪽

해석의 관건은 곡식 기장[피]과 왕의 관계다. 옛 백제 지역에서 간행한 『천자문』에는 왕(王의 새김[訓]이 곧 기장이다. 『제왕운기』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기자조선’이 고대 중국의 성인 기자(箕子와 무관함을 알게 된다. … 백두산으로부터 곡영(鵠嶺에 도착한 도선 스님이 고려 태조 왕건의 집 터를 보더니 “기장을 심을 땅에 왜 삼[麻]을 심소?”라고 물었다. 시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