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4
1. 송강은 알아도 송강정은 모른다 12
2. 송강 옆 언덕 위의 정자 18
의외로 가까운 송강정
죽록정인가? 송강정인가?
송강정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이름 빌린 지 삼십 년
3. 인연의 끈, 송강 정철과 전라도 창평 32
송강 정철은 서울 태생이다
을사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고향 창평으로
송강에게 창평은 어떤 곳이었을까?
제2의 고향 창평
유배지나 다를 바 없는 창평
드디어 벼슬길에 나서다
송강 벼슬살이의 변수가 된 성품
동서 분당, 그 혼돈의 정치
첫 번째와 두 번째 낙향
세 번째와 네 번째 낙향
정여립 모반 사건이 터지다
위관이 되어 파란을 일으키다
호남에 큰 상처를 남기고 숨을 거두다
4. 송강정의 운명 62
주인이면서 손님처럼 빌려 쓴 송강정
송강이 죽은 뒤, 송강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버려진 송강정
송강정보다 환벽당과 식영정을 아낀 후손들
기와 정자로 다시 태어나다
5. 송강정에서 노래한 작품들 82
혼자만의 공간
정치적 포부를 밝히다
숨을 것인가, 나갈 것인가
조선 최고의 미인곡을 짓다
평생에 원하기를 함께 가자 하였더니
왜 하필 3년째 되는 해에 지었을까?
임인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어와 너로구나 이내 사설 들어 보오
6. 송강정, 그 쓸쓸함에 대하여 106
외롭게 자리를 지켜 온 송강정
외로움과 쓸쓸함을 아는 송강정의 진짜 주인
그래, 여기까지가 내가 가꾼 땅이었다
여행 길잡이
참을 수 없는 그리움 글이 되어 떠오르는 송강정 114
송강정 현판 121
무등산권 누정 여행의 길잡이,
지역의 기관과 출판사가 의기투합한
의미 있는 결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한 해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 유홍준은 소쇄원을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했다. 하지만 그곳에 들른 사람들이 소쇄원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정보의 빈곤이라기보다는 정보의 어려움 때문이다.
소쇄원을 느끼려면 알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그곳에 얽힌 인물과 시대적 배경, 그들의 작품과 조경의 특성 등등. 인터넷에서 얻은 몇 줄의 정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딱딱한 전문서적과 씨름해야 하는 어려움이 남는다.
『광주문화재단 누정총서』(1∼6권(심미안 刊는 그러한 고민의 소산이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길에서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할 만한 누정 길잡이 책은 왜 없을까. 지역의 기관과 출판사가 의기투합하여 내놓은 의미 있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광주와 담양이 만나는 무등산 자락에는 유서 깊은 누정들이 널려 있다. 이번 총서에는 모두 9곳의 누정을 다루었다. 일동삼승(一洞三勝이라 불리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을 비롯하여 독수정, 명옥헌, 면앙정, 취가정, 풍암정, 송강정이 그것이다.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세상을 등지고 은둔한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소쇄원, ‘그림자도 쉬게 한다’는 식영정, ‘푸르름을 사방에 가득 두른’ 환벽당,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독수정’, ‘옥구슬처럼 떨어지는 물방울의 집’ 명옥헌, 하늘·땅·사람을 아우르는 면앙정, 의병장 김덕령의 한이 서려 있는 취가정, 바위도 붉게붉게 울먹이는 풍암정, 정철(鄭澈, 1536~1593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산실 송강정.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다. 누각(樓閣은 사방을 볼 수 있게 마룻바닥을 높게 지은 다락 형태의 건물이고, 정자(亭子는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보다 간소한 구조의 목조 건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환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