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미 군정기와 민족의 비원
해제 _김태우
투필(投筆의 실패―자서(自序에 대(代하여
이성의 몰락―한 자유주의자의 항변
정치의 탄력성
언론과 정치
민요(民擾와 민의(民意―언론계에 보내는 충고
참괴(?愧의 신 역사―해방 후 1년간의 정치계
시련과 자유―해방 1주년을 맞이하며 / 곡영우(哭迎又 1년―민족의 지향을 찾자
도산(島山 선생의 최후
오동진(吳東振 선생을 추도함
좌우합작의 가능성―불합작(不合作 구실의 축조적(逐條的 검토 / 3당 합동(合同의 생리(生理
민족의 비원―하지 중장(中將과 치스티아코프 중장을 통하여 미소 양 국민에 소(訴함
속(續 민족의 비원―경애하는 지도자와 인민에게 호소함
중앙인민위원회에―남북 양대 세력에게 주는 말 / 입법의원에 여(與함―무엇이 가능하겠는가?
관료와 정치가
5원칙과 8원칙
신탁과 조선 현실 / 삼상 결정(三相決定과 대응책 / 국제 정세와 공위(共委 속개―우리의 운명을 냉정히 인식하자
미국의 대(對조선 여론
민중
건국·정치·생산
생산하는 나라
예수와 조선―혁명 정신의 반동화를 계(戒하여
추기(追記
“이제부터는 노예의 무덤이 아니다!”
1945년 해방이 된 다음날. 오기영은 망우리 가족 묘지를 찾아갔다. 무덤 위에 태극기를 덮어 놓고 그 앞에 서서, 오기영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는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오기만, 그리고 오기만의 후원자이자 그의 아내인 명복이 안장되어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조문하는 이들도 죽음의 상처로 얼룩진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사회주의자로서 독립운동을 하다 수감 중에 해방과 함께 서대문감옥에서 놓여나온 동생 오기옥과 조카 오장석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감된 적이 있는 여동생 오탐열, 독립운동으로 수감 중에 얻은 병으로 친정오빠를 잃은 오기옥의 부인, 독립운동으로 수감 중에 얻은 폐결핵으로 사망한 남편을 둔 누님이 함께 하였다.
그 자리에서 오기영은 소리친다. “이제부터는 노예의 무덤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의 탄성이면서, 심장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통곡이었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가족사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된 ‘적폐청산’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과거의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를 향해, 구김 없이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그리고 통일 조국의 평화세계을 위하여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적폐의 역사에 짓눌리고 가려져 묻혀 있는 정의로운 역사를 발굴하여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그 역사의 진면목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재조명하는 일이다. 적폐의 청산과 미래의 건설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민족사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하고, 받아야 할 기림을 받도록 하고, 얻어야 할 명예를 누리며, 기억되어야 할 뜻과 정신이 온전히 기억되도록 하는 데서만 가능해진다.
그것은 이미 돌아간 영웅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를 기억하며 살아갈 후손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기본이며 근본이 되는 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