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선구자와 희대의 행운아, 상반된 평가 받는 예술계의 아이콘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재림.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백남준은 이해되고 있다. 전위적이고 실험성 강한 그의 예술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킴은 물론 예술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럽에서의 평가에 국한된다. 한국에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에서의 백남준은 ‘시대의 행운아’ 정도에 그치는 평을 듣는다. 유럽에서 활동한 백남준은 당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며, 이와 같은 주목은 ‘이국적 보너스’라고 불리며 특혜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하는 예술가, 백남준은 한국에서 그런 존재다.
유럽의 미술사가들이 백남준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그의 존재를 낮게 폄하하는 한국에 비해, 유럽에서의 그의 위상이 독보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500여 년의 유럽 예술 역사 속에서, 전통과 가치의 반목과 조화 속에서, 백남준이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데는 미술적인 논리와 이유가 필요하며,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시대예술을 재정의한 백남준의 창조력
다분히 개혁적이라 할 수 있는 백남준의 예술은 ‘미래를 사유’하며 새로운 시대예술을 정의했으며, 동시에 전통의 힘과 관습의 틀을 지적이고 자유롭게 창작을 위한 유희 속에 엮어냈다. 이는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지나면서도 늘 다시금 새로운 감동을 주는 원천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예술이 지닌 진정한 가치이기도 하다. 이 모두를 구체화해 내는 것, 더불어 실질적 이해를 돕는 것, 이것이 이 글이 탄생하게 된 의미이자 배경이다.
이 책에서는 독일과 일본 두 나라에서의 백남준 작품을 보는 시각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