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만 했던 임정
강대국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라는 ‘악마의 맷돌’
한복판에 던져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 책은 미국과 조선 민중 사이의 현격한 격차에 대한 연구다
“임정의 기나긴 항쟁사는 강대국의 권력정치라는
‘악마의 맷돌’에 갈아 뭉개져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가슴 아프고 원통한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자. 1945년 11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웨더마이어 주중 미군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나와 최근까지 충칭에 주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와 동료들이 공인 자격이 아니라 엄격하게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패전국 일본을 쫓아낸 그 자리로 돌아올 때 임시정부 요원들은 ‘공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용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하나의 정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펴낸 『임정臨政, 거절당한 정부』는 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정부로서 승인받지 못했는지를 각국의 내부 문건을 통해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다. 집회 횟수 1542회, 집회인 수 202만3098인, 사망자 수 7509인, 부상자 수 1만5961인, 투옥자 수 4만6948인……. 임정은 그러므로 실로 거족적 반일항쟁에서 표출된 전 인민적 의사의 위임을 받아 수립된 것이다. 하지만 1919년 3.1혁명으로 ‘전 국민의 위임을 받아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