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9
자신의 바깥에서 읽을 것 9
정서로 이루어진 정치 13
정서, 관념, 인게니움 19
‘감정’이 아니라 정서―정념의 인간 호모 파시오날리스 19
정서와 ‘관념’ 24
어떤 관념이 누구를 변용하는가?―인게니움의 굴절 29
(하나이며 동일한 사물을 설명한다는 것 혹은 이해한다는 것? 34
합리성의 정서 40
정치, 변용의 기술 43
변용의 기술로서의 정치…… 그리고 그 변수들 43
가난한 자에 대한 여론조사 혹은 정서측정 49
표상의 불안한 중재 54
물질적인 정서, 관념적인 정서(거짓된 이율배반에 종지부를 찍을 것 59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 63
관념에 능력을 부여할 것 69
기후변화를 형상화할 것 73
행동주의 혹은 인상의 전략들 75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할 것, 비전을 공유할 것 80
유사성에 의한 공감 84
결핍된 심상을 복원할 것 89
보도록 강제할 것 93
거북한 심상들을 감수할 것 98
추상작용의 정부 103
피통치자들을 통치자들처럼 사유하게 만들 것 107
정부 추상작용의 방화벽(절대로 보지 않기 111
반란의 정념 117
절망스러운 결정론? 118
역사는 하나의 산물이다 125
혁명, 다른 일을 하려는 결정 128
권력, 대중의 능력을 포획하는 것 130
‘적법성’의 아포리아 134
제도의 정념적 불안 139
인게니움에 따라 변이되는 격분 147
반란의 정념적 역학 154
필연적이라 표상된 원인들의 장애물 159
공포의 비대칭 163
결정적 임계의 정념적 구축 167
불행을 선언할 것, 투쟁을 선언할 것 170
변환적 경험으로서의 반란 174
공통된 정서의 양가성 181
격분에 대한 환멸 188
제우스가 유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191
관용의 이동 194
구조들 안에 있는 정념과 코나투스: 역사의 동인 198
‘논리적 봉기’의 변용가능성 201
기괴한 관점과 보편적 관점 사이의 지적인 관점 205
‘지적인 표상’을 발전시킬 것 209
정치, 변용의 기술
스피노자 철학에서 정서는 변용에 따르는 결과이자 변용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정서의 연쇄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는 인간의 어떤 행동을, 즉 어떤 결과를 산출하려는 목적을 갖고 상대의 정서에 개입하는 것, 상대의 정서를 가공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언제나 정념이란 요소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이유 때문에 ‘개입하기’는 결과를 산출하려는 계획, 그러니까 변용하려는 계획을 형성한 것이다. (… 그러므로 개입하기는 늘 결과를 산출하려는 욕망을 지니고서 정념적인 재료를 가공하는 것이다. _43쪽
결국 정치는 인간의 모든 육체적-정신적 활동의 결과이자 원인인 정서를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변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스피노자의 개념을 가져오자면, 어떠한 정치적 활동이 코나투스, 즉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긍정적이어서 기쁨의 정서를 산출한다면 좋은 변용이고 반대로 부정적이어서 슬픔의 정서를 산출한다면 나쁜 변용이다. 그러므로 좋은 정치는 상대에게, 대중에게, 국민에게 좋은 변용을, 나쁜 정치는 나쁜 변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질서, 인간의 정치 또한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하나의 활동이 사람마다 그 기질(인게니움 또는 들뢰즈의 ‘주름’에 따라,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서도 처한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정서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친기업적 정책을 펴는 보수당에 표를 주는 임금노동자를 생각해보자. 친기업적 정책은 그에게 기쁨을 줄까 슬픔을 줄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매듭지으면 그만일까. 다시 말하지만 정치는 ‘변용의 기술’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정치는 ‘정서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정치는 미디어를 이용하고 전문가를 동원한다. 정치권력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서 공통 정서를 산출하는 것, 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