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앵앵
용의 고기를 먹어 보지 않고
열네 살, 기로에서
날아오르다
앵두
순챗국 한 그릇
누군들 무릉도원에서 살고 싶지 않으랴
구름 그림자
여와씨의 호리병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귀로 먹은 약과
단발령에서 만난 멧돼지
옛 성터의 돌멩이들
이것이 어찌 풍경 탓이랴
나귀, 추락하다
세속의 일이 슬프구려
인연의 그물
봉래풍악 원화동천
허 부인의 옥함
비적패 무릉당
양반이라면 이를 가는 인간이
마하가 으뜸일까?
썩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강호의 마음을 지녔으나
유점사에서 박씨 부인을 생각하다
총석의 소나무처럼
크디큰 천지, 그 품 안에
꿈에서 어머니를 봤어요
가르쳐 주시어요, 이 윤똑똑이를
언젠가 우리 둘 다 죽을 거요
주목 비녀
내 팔자치레는 내가
삼호정에서
용의 고기를 맛보았습니다
『호동서락기』 서문
“고기를 먹어 보지 않고 어찌 이야기로 맛을 알겠느냐?”
당돌한 조선 소녀 앵앵, 진짜 세상을 맛보러 유람을 떠나다!
열네 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에 오른 것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 여성 시인 김금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가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창작 활동을 해 온 작가 박정애는 김금원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어 자기애 깊고 호기심 강한 소녀 ‘앵앵’을 창조해 냈다. 기생첩의 딸이라는 신분과 성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남자 옷을 입고 유람을 떠난 앵앵은 두 소년 앵두와 운영을 일행 삼아 여행하며 미처 모르던 진짜 세상과 마주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희로애락 가득한 인간사를 목격한 앵앵은 글로만 접하던 세상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기에 이른다. 갖은 속박을 당하면서도 그 속에서 최대한 자유를 좇으며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 앵앵의 이야기는 성적, 진학, 취업 등에 얽매인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험난하더라도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보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인생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한계 너머의 삶’을 꿈꾸는 금원의 능력이 열네 살에 남장 여행을 단행하게 했으며, 그 여행에서 금원이 ‘한계 안에서의 삶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호동서락기』를 남긴 조선 후기 여성 시인 금원의 파란만장 금강산 유람
19세기 시 잘 짓는 기생으로 유명하던 김금원은 최초의 여성 시단 ‘삼호정시사’를 주도하고, 금강산과 관동 팔경을 비롯한 유람 경험을 엮어 기행문 『호동서락기』를 남겼다. 작가 박정애는 김금원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서 주인공 ‘앵앵’을 탄생시켰고, 앵앵이 왜 남장까지 하면서 길을 떠났을지, 도중에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겪었을지, 『호동서락기』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냈다. 앵앵은 기생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제 뜻을 펼칠 수 없는 당시 사회에 강한 불만을 품는 동시에 세상에 나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