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누시 코르차크는 누구인가?
야누슈 코르착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이 책의 부록 ‘어린이를 믿고 사랑했던 코르차크의 삶과 죽음’에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여기서는 부록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원래 폴란드의 의사였다. 그러나 의사는 의사는 열이 나는 아이를 보살펴 고비를 넘기고 병을 낫게 해줄 수 있지만, 의사의 손을 떠난 아이는 다시 암흑의 세상 속으로, 의사가 따라갈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그곳으로 사라져버린다. 당시 폴란드에 버려진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코르차크는 결국 병원을 떠나 고아원을 운영하게 된다.
아직 아이들의 인권에 대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시절에 아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했고, 고아원을 아이들 스스로 자치하도록 어린이 법정을 만들었다. 훗날 이 어린이의 인권은 UN 어린이 인권헌장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폴란드에서는 야누시 코르차크를 기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야누시 코르차크 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창가의 토토》를 쓴 작가 구로야나기 테츠코, 《사랑의 매는 없다》를 쓴 아동심리학자 앨리스 밀러 같은 이들이 이 상을 받았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유네스코는 1979년을 ‘어린이의 해’이자 ‘야누시 코르차크의 해’로 선포했고, 야누시 코르차크 국제협회가 전 세계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는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소크라테스에 비견된다. 사후에 독일 평화상을 수상했고,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폴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안제이 바이다가 만든 영화 〈코르착〉이 전 세계에 상영되었으며, 연극 〈코르착과 아이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1942년 8월 6일, 트레블링카로 가는 열차를 타지 말라고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만류했고, 심지어는 독일군 장교마저도 야누시 코르차크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내 아이들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며 죽음의 행렬 맨 앞에서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