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더치 셸의 아프리카 니제르 삼각주 석유채굴과 관련된 현지의 분쟁과 환경피해, 인도 보팔의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에서 일어난 유독가스 누출 사고로 인한 인명살상, 파키스탄의 나이키 축구공 제조공장을 비롯한 제3세계 저개발국의 아동고용과 노동착취…. 20세기 후반에 기업 활동의 지구화와 다국적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게 된 기업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더디고 미흡했다.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 상충과 기업계의 반대 로비가 국제사회의 논의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기업과 인권’ 의제를 둘러싼 이런 국제사회 논의의 교착상태는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됐다. 기업들 스스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경영에 반영하는 움직임이 확산됐지만, 기업의 인권침해 방지를 이런 자발적 노력에만 의존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유엔은 21세기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10대 원칙 준수를 핵심으로 하는 유엔-기업 간 협약인 ‘글로벌콤팩트’를 출범시켰고, 보다 강제력 있는 ‘기업 인권규범’을 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글로벌콤팩트는 애초부터 자발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기업 인권규범은 유엔 인권위원회(인권이사회의 전신에서 채택되지 못하여 사실상 폐기됐다.
2005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이 책의 지은이인 존 러기 하버드대학 행정대학원(케네디스쿨 교수에게 이런 교착상태를 깨뜨리고 기업과 인권 의제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통로를 열어줄 것을 부탁했다. 러기는 이 제안을 수락하고 아난 사무총장의 ‘특별대표’가 되어 해법 모색에 나선다. 러기는 그로부터 6년 간에 걸쳐 기업과 인권 의제의 틀과 관련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프레임워크(보호, 존중, 구제: 기업과 인권에 관한 프레임워크’와 그 실행지침인 ‘이행원칙(기업과 인권에 관한 지도원칙: 유엔 ‘보호, 존중, 구제’ 프레임워크의 이행’이라는 두 개의 문건을 작성했다. 이 두 문건은 각각 2008년과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