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흡은 민중 작가 선배들로부터 받은 감화, 전통회화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와 재창조 시도, 부단한 문화유산 답사와 땅 밟기,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정직하고 차분하게 기초를 충실히 다져온 젊은 수묵화가이다. 이제까지는 좋은 작가가 될 소양을 기르고 텃밭을 다져놓은 상태이다. 특히 작년과 금년의 초대전과 개인전을 점검해보면 이제 도약의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실에 눈 돌린 주제 의식과 전통회화의 조형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 색깔과 방식 찾기나 용묵운필법用墨運筆法에서 분명히 한 걸음 내디뎠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만큼 기초가 듬직한 수묵화가를 찾기 힘들다. 더욱이 그와 동세대 작가들이 의식 없이 가볍고 무의미하게 밖의 조류에 허둥대는 풍조에 비교하면 그의 수묵 작업은 정말 값지게 보인다. 또한 그동안 내보인 하성흡의 작품들은 5년 동안 동명동 집의 한편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패기와 뚝심으로 무더위와 냉기를 이겨내며 그린 것이어서 더욱 사랑스럽다.
이 시기를 떠올리면 먼 훗날 누군가가 하성흡의 작품론을 쓸 때나, 아니면 그 자신이 눈물겹고 아름답게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 비닐하우스 화실에 머물러 있고 가까운 시일 안에 그곳을 벗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동안 열심한 200여 점의 크고 작은 작업 결과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 가치를 극대화시키키 위해서라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도 높은 수련을 거쳐야 하고, 앞으로 피눈물은 얼마나 흘려야 할지. ● 이태호 / (전명지대 교수,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