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주요내용 및 학문적 기여도
이 책의 내용은 정유년(숙종43년, 1717에 일어나 무술년에 마감된 경상 감시에서의 과거시험 거부 사건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정유’의 ‘유’와 ‘무술’의 ‘술’을 따서 「유술록」이란 제목을 붙인 것이다. 필사자는 여용빈(呂用賓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대로 이 사건의 빌미가 된 것은 숙종이 경연에서 한 세자(동궁, 후일의 경종에 대한 미안한 가르침이었다. 일기에서 그 미안한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이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 미안한 가르침이란 숙종이 동궁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면서 이이명을 독대하여 후일 동궁이 등극하거든 동궁이 몸이 약하고 후손이 없으니 연잉군(延?君, 후일의 영조를 왕세제로 앉히도록 하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사건은 갑술옥사 이후 남인이 정계에서 실각당하고, 노론과 연결되어 있던 연잉군(延?君; 경종 때 왕세제이 영조로 등극(1724년한 후 소론 배제, 왕권강화를 위한 탕평책으로 노·소론 보제조합에서 노론 일당전제의 정국과 사도세자의 죽음 등으로 연결된다. 이 일기에 나타나는 영·호남을 중심으로 중앙정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유생 및 사대부들의 집단상소 및 항거는 갑진옥사, 무신란(의거, 영남만인소, 진주민란(임술농민항쟁 등에서 그 모습이 재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서인-노론 중심의 관변적인 기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실증주의적인 조선 후기 정치·사회·경제사 및 사상사 연구의 문제점을 재조명하게 할 자료적 가치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이 일기책은 「조선왕조실록」에 간단하게 나오는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매우 소상하게 기록해서 그 전말을 알려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관청 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첨부함으로써 그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무리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필사자인 여용빈이 유학자인 양반으로서 그러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당시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