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Ⅰ. 머리말
1. 연구 동향과 목적
2. 연구 내용과 방법
Ⅱ. 통일기 이전 왕경의 정비
1. 왕경의 성립
1 방리명 제정의 의미
2 평지성-산성의 이원구조
2. 중고기 왕경의 정비
1 궁성과 도시의 재정비
2 황룡사와 도시 계획
3 왕성 운영 체제의 변동
Ⅲ. 통일기 왕경의 변화
1. 당 문화의 수용과 왕경의 정비
1 당 문물의 수용
2 유학 중심의 정치 지향
2. 문무왕의 왕경 개조
1 왕경 개조와 택일
2 왕궁의 확대 정비
3. 왕경의 변화
1 권위 건축물의 증가
2 시가지의 확대와 도로의 정비
Ⅳ. 통일기 왕경의 구조
1. 왕경의 시가지
1 공간 구조와 방리의 구획
2 수공업 공방의 운영 양상
2. 왕경의 배후지
1 도시화의 진전
2 특수 촌락의 편제
Ⅴ. 맺음말
부표
참고문헌
이 책은 나의 학위논문인「신라 통일기 왕경의 구조와 운영」을 토대로 수정, 보완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문헌이 바탕이 되면서도 물질자료로 왕경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왕경에서 이루어진 발굴 자료를 모두 정리해 보았다. 발굴 정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언급함으로써 왕경의 대체적인 경관이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고된 자료의 대부분이 시기적으로 통일기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글의 중심은 통일기로 잡으면서 전야에 해당되는 중고기의 왕경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Ⅱ장 통일기 이전 왕경의 정비에서는 중고기 왕경의 경관을 살펴보았다. 왕경은 진한의 소국인 사로국이 중앙집권적인 영역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전환된 것이다. 특히 왕경의 외적 변화를 초래한 요인으로 마립간호의 사용, 불교 공인, 유학, 당 문물의 수용, 무열왕계의 집권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자비마립간의 방리명 제정은 공고한 6부 지배질서에 인위적인 균열을 가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왕경의 외형 변화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의 성장은 고구려의 간섭을 배제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는 역으로 그간 국가의 운영체제를 고구려로부터 습득하였음을 웅변한다. 중고기 평지성-산성의 이원적 운영은 바로 그 산물이다. 진흥왕대 황룡사의 창건은 평지의 왕경 편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리고 진평왕대 남산신성의 축조는 왕경 운영 시스템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고구려와 관계가 결렬되면서 전시체제에 준하게 운영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 관제는 진평왕대 크게 정비되는데 이는 왕궁인 월성의 외형 변화를 야기한다. 어쩌면 해자의 매립이 통일기 이전으로 상회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Ⅲ장 통일기 왕경의 변화에서는 문무왕의 왕경 개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춘추가 집권하자 당 문물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다. 국정운영도 중고기 왕실의 佛家族신앙에서 유학적 정치질서로 전향하였다. 진지왕의 후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