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 7
서론: 무리짓기와 경계의 본능 … 8
1. 중국: 만리장성과 방화벽 … 19
2. 미국: 세계 제국의 폐쇄성 … 57
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장벽을 둘러싼 여러 사정 … 101
4. 중동: 아랍의 봄은 올 것인가? … 139
5. 인도: 곪아드는 내부와 외부의 갈등 … 169
6. 아프리카: 식민주의가 남긴 장벽 … 209
7. 유럽: 포용과 폐쇄, 통합과 분열 사이 … 245
8. 영국: 대국의 고요한 신음 … 291
결론: 사이의 공간들 … 329
옮긴이의 글 … 347
참고문헌 … 349
찾아보기 … 355
장벽, 나누고 가르고 가두다
냉전 시대 철의 장막이 걷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세계는 통합의 길로 다가가리라 생각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 냉전기보다 더 많은 장벽이 세워졌다. 유럽 여러 나라는 이웃한 나라에서 넘어오는 이주민과 난민을 막기 위해 장벽, 담장, 철조망을 세웠다. 중동에서도 이웃한 나라와 가르는 장벽을 세웠다. 아시아에서도 장벽의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많은 경우 장벽은 실질적인 목적보다는 상징적인 목적을 가진다. 장벽은 의심과 거부, 두려움과 기만, 오해와 착각이 세운 것이다.
언어, 민족, 국가, 소득, 세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다.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시민 사회가 형성되면서 계급이 무너지고 관용의 시대에 접어든 듯했으나 차별과 혐오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인도 시민의 가능성을 옥죄고, 중국과 중동, 아프리카에선 여전히 민족이 주요한 갈등 요소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인종주의와 국가주의에 따른 정체성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장벽은 발걸음을, 이동과 통행을, 말과 소리를, 생각과 사상을 나누고, 가르고, 가둔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물리적 경계선이 폭력적 형태로 드러난 결과물이다. 벽돌과 콘크리트,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장벽에는 그만큼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
넘어설 수 없는
신분과 가난의 장벽
국가나 공동체 내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야말로 사람을 나누고 가르고 가두는 가장 커다란 장벽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3000년 전 힌두교 경전인 《마누법전》에 근거하여, 지금까지도 ‘사회의 질서와 규칙성의 토대’로 인정받는다. 물론 도시 생활의 압력에 시들해지고, 불가촉천민으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의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카스트 제도는 살아 있다. 카스트 제도는 사람의 재능과 가능성을 신분에 가두는 장벽이다.
중국의 18억 인구는 사실상 세대, 계급, 수입, 민족, 종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