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단순히 틀린 게 아니었다.
그는 종종 옳았고, 자기가 예상한 바 이상으로 정말 옳았다.”
오늘날 계몽된 자유주의적 독자라면 『공산당 선언』을 일찍이 틀렸다고 판명 난 예언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설에 둘러싸인 우리는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에 등장했던 유령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다.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당면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환기하며 4차산업혁명의 장밋빛 미래, 선량한 자본가가 감추고 있는 착취를 가시화한다.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걸맞게 호명하는 지젝의 논리 안에서 공산주의는 실패한 해결책이 아닌 진행형의 ‘문제’로서 의미를 얻는다.
이 책에서 지젝은 『공산당 선언』이 여전히 유효한 통찰임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앞서 그는 먼저 자본주의의 현 단계, 글로벌 자본주의의 현실을 직시한다. 협력적 커먼즈의 성장과 기술혁신은 세계를 더 평등하게 만들고 있는가. 지젝은 이러한 변화가 기대와는 달리, 세련된 형태의 계급적 착취일 뿐임을 파헤친다. 시장, 화폐, 상품, 노동의 위상이 달라진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이 진짜 굴러가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지만, 억압의 쇠사슬은 그들의 바람보다 강고하다.
‘자유’라는 이름의 세련된 착취
: ‘노동자’가 아닌 ‘취업자’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회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처럼 떠오른 협력적 커먼즈의 성장은 ‘일반 지성의 사유화’라는 전에 없던 위험을 동반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착취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흔히 이야기되지만, 여기에서 지젝은 ‘공정’해지려는 시도, 착취를 없애거나 제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상품화로 귀결되고 마는 비극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노예제가 나타나는 것을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구조적 필연으로 파악했다. 예컨대, 학생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부채를 쌓고, 그 부채를 자기 상품화, 곧 구직을 통해 갚아야 한다. 제3세계에서 이주한 난민 역시 교육을 통해 노동력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