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일러두기
해제: 유득공과 수정본 《발해고》
《발해고》를 읽다(《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이규경의 발문
성해응의 서문
박제가의 서문
유득공의 서문
인용서적 목록
오경도
오경표
권1 군고
권2 신고
권3 지리고
권4 직관고, 예문고, 부록 정안국고
부록: 수정본 《발해고》 원문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역사 ‘발해사’
발해사의 귀속 문제는 여전히 동아시아의 뜨거운 화두이다. 발해사의 귀속 문제를 두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각국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갈등을 겪고 있다. 발해사 전공자인 김종복 교수는 발해사를 둘러싼 해석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발해사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규명하고 전근대의 역사인식을 살펴보는 사학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발해사를 연구해 왔다. 특히 한.중.일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발해를 자국사의 체계에 포함시켰던 우리 선학들의 노력과 성과의 정점인 4권본 《발해고》 연구에 큰 힘을 쏟았다. 《정본 발해고》는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김종복 교수의 10년에 걸친 치열한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유득공이 최종 증보한 《발해고》 4권본
풍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 정수를 담아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가 남아 있지 않아 발해 지역의 영토를 소유할 역사적 명분을 잃어버렸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여러 나라의 역사서들에 수록된 발해에 관한 사실들을 모아 1784년 《발해고》를 편찬했다. 《발해고》는 한민족의 역사 무대를 발해의 영역이었던 만주 일대로 확장한 최초의 저서이다. 발해를 자국사와 무관한 주변국의 역사로 취급하던 기존의 역사인식을 뒤로하고, 발해와 신라를 병립한 남북국론을 제기하여 발해사를 자국의 체계 안에 편입시킨 역사적인 시도였다.
유득공은 《발해고》를 편찬한 이후에도 발해사 연구를 계속 이어나갔다. 새로운 자료를 참조하고, 사신 자격으로 중국에 다녀오며 현지 답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발해고》를 3차례 수정하고 보완했다. 이 결과물을 자신의 저작들을 직접 정리한 《영재서종》에 수록했다. 이것이 바로 4권본 《발해고》이다.
4권본은 처음 집필한 초고본과 비교해 구성부터 내용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초고본이 1권 9고 체제였던 것에 비해 4권본은 4권 5고 체제로 구성이 대폭 수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