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1장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번째 이별
에베레스트 청소 등반
2장 어드벤처 레이스
일본 여성 돌풍
코스타리카로
3장 첫 히말라야 등정
골든피크
연속등정
4장 초·중등학교 시절
책의 세계로
홈 메이킹부
5장 극한의 벽에서 8,000미터 봉우리로
드래곤 리지
극한의 시블링
등정 50주년의 마나슬루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도전
6장 미국 유학
고등학교 2학년 여름 홋카이도
미국 유학
7장 여성 최초의 황금피켈상
미답의 카메트 남동벽
다음에는 무엇?
8장 자전거와 문학과 산
메이지대학 사이클리스트 투어링 클럽
갈매기 조나단
미치듯 했던 국내등반
9장 더욱 어려운 벽으로
미지의 가우리샹카르
알래스카 추모등반
자기표현으로서의 등반
새로운 만남
나에게 지고 싶지 않아
10장 새로운 여행
빙하와 책과 음악
학생들과 무스탕으로
우에무라 나오미 모험상을 사양하다
11장 판드라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2년 후의 구로다케
미완의 라인
해설: 다니구치 케이가 우리에게 남긴 것 - 노구치 겐
옮긴이의 글: 이런 여성 처음 봤다
다니구치 케이 프로필
후주
찾아보기
황금피켈상 클라이머 다니구치 케이 평전
太陽의 한 조각
일본인 최초이자 여성 최초로 황금피켈상을 받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43세에 생을 마감한 다니구치 케이를 기리며 그녀의 후배 산악인 오이시 아키히로가 평전을 썼다.
다니구치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고교시절 집을 나가 자립해서 혼자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누추한 곳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오직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러다가 산과 만나 그 세계에 빠져들었는데, 이렇게 살아간 그녀의 청춘은 그야말로 빛났으며, 달리 비할 데가 없었다.
다니구치는 산과 만나기 전에 넓은 외부세계로 나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어드벤처 레이스를 즐기면서 이문화異文化와 접하고, 대인관계를 넓혀갔다.
그녀의 해외원정은 최고봉이 대상이 아니었다. 히말라야 자이언트에는 눈이 가지 않았고, 언제나 미답봉과 미답벽에 마음이 갔다. 그런 곳에 그녀는 자기만의 라인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다니구치 케이는 사회에서나 산에서나 자기 식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았다. 언제나 그녀가 도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사회나 산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었다.
다니구치 케이의 매력은 클라이머로서의 빛나는 성취에만 있지 않았다. 다니구치 케이는 깊은 눈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벽에 붙기까지 이틀이나 걸리고, 나흘간의 식량으로 6박 7일이 걸리는 등반을 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저 즐거워했으며, 늘 웃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남다른 파트너십이 거기 있었다. 그렇게 다니구치는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이러한 그녀를 받쳐준 것은 등반기술이나 체력이 아니고,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었다. 그것에 끌려 여러 파트너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다니구치는 언제나 태양처럼 사람들을 비춰주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서 태양의 한 조각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