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들어가며 괭이를 장만할 때의 그 두근거림으로
여는 일기 산촌에서의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제1장 밭이랑에 묻어보는 허튼 인생
살랑살랑 봄바람 속 밭을 일구다
전복양식장의 유혹
찌릿찌릿 아린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애꿎은 마음에 비는 내리고
기적을 부른 고구마 혁명
마침내 고추농사로 돈맛을 보다
쌀농사를 버리며
결혼기념일에 날품을 팔러 나가버렸다
내 밭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2장 가까이 산다고 이웃은 아니건만
무엇이 김장김치의 맛을 만드는가
겨울, 경로당 가는 길은 좀 녹았으려나
하나둘 떠나는 이웃들
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내 꿈은
봄날, 다래 순을 따다
살아갈수록 미워해야 할 사람이 늘었다
김 씨를 만나러 요양원 가는 길
제3장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서로를 보배롭게 여기면서
새 주방가구를 장만하면서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쓸쓸한 외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외갓집처럼 친정집처럼 그렇게
봄바람 맞으며 봄 소풍 갈거나
무심한 지아비, 무심한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장가 잘 든 사람
시아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요즘에 시는 좀 쓰나
제4장 새가 되어 날아간 바둑이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었다
꽃분이가 사라졌다
수탉이 우는 새벽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꽃이 피는 이유
저 생명들에 마음을 열어보시라
고구마밭에 남몰래 숨겨둔 애환
그들의 거룩하고 따뜻한 마음
제5장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다시, 기차여행을 꿈꾸다
이 가련한 일중독자야
버려진 전등 앞에 서서
좁쌀 한 톨에 담긴 피 땀 눈물, 그리고 사랑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그동안 나의 세상은 무정했네
나이와 함께 몸도 저물기 시작했다
다시 새 봄을 기다리며
나는 언제나 고향이 그립다
숨길 것 없는 가벼운 삶
대신 맺는 말 고향이 멀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나무처럼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귀농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저자 김석봉은 이렇게 답한다. 얻은 것은 사람과 시간이라고. 그동안 자신은 사람을 한길로 걸어가는 ‘동지’, 그 길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남’, 그리고 우리에게 저항하는 ‘적’으로 나눠서 보고 있었다고. 늘 ‘동지’와 함께 있고자 했으며 ‘적’에게는 항상 대척점에 서 있으려 했고 ‘남’의 존재는 잊고 살았다고. 그동안, 자신의 세상은 무정했노라고.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일구며 산다는 것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산골 농부로 살면서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갑자기 찾아와 정든 이야기를 하룻밤 나누고 돌아가는 단골손님, 올 때마다 선물을 그득히 안고 친정집 방문하듯 한 해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가족손님, 편치 않은 몸이지만 마을 이웃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이웃 주민들…….
전부 지리산으로 내려와 살기로 결심했을 때는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기에 그는 큰 욕심을 내려 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조금 더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전복양식장에 나가볼까, 고추농사를 좀 더 늘려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나마 하지만, 결국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만난 모든 생명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것뿐.
소슬히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뽐낼 것 없는 삶이었으나 숨길 것 없는 삶이었으니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지금 이 순간이, 좋은 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