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감독은 김민희의 주인공 캐스팅에 대해 영화, ‘화차’를 보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태여 영화 속의 연기만을 보지 않더라도 이 영화, ‘아가씨’에는 어쩌면 가장 뛰어난 모던미를 갖춘 배우가 아닐까 하는 다수 비평가들의 생각이다. 어설퍼 보이는 히데코의 일상들이 김민희의 차분함과 냉철함으로 소름 돋게 업그레이드 시킨다. 그럼에도 영화는 자연스럽지 못한 몇 장면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예를 들면, 하정우의 정사신이다. 그는 아가씨를 녹이기 위해 키스를 하고 가슴을 주무르고 갖은 노력을 해보지만 관객들의 시선에서는 어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가슴을 만지는 게 아니라 왼손이 김민희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스크린에서 보이지 않게 어떻게든 막아보려 노력하는 게 역력했다. 백작이 아닌 하정우가 김민희라는 여배우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한 신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정사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최고의 배우를 감독 박찬욱이 망쳐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인 지영민을 연기한 하정우는 소름 돋는 연기로 관객을 숨죽이게 했다. 그런 내면의 깊은 연기까지 소화해내는 배우의 저력을 갖고 있었지만 정사신은 그에게 무리였다. 백작이라는 호칭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보였고 차라리 못된 사기꾼이면 나을 뻔하다. 먹방의 지존으로 숙희 앞으로 걸어가며 사과를 베어 무는 장면이 남자답고 하정우 다운 매력이 순간 튀어나왔다.
- 「아가씨」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