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중세 러시아 지배한 시기 본격 소개
그 노력으로 인해 중국의 몽골 정권인 원나라, 페르시아의 몽골 정권인 일 칸국에 대해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이나 페르시아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몽골족은 상주常住하면서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몽골의 통치를 받았던 중국·페르시아 관료들이 몽골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 반면, 러시아 연대기들은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기록했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몽골의 지배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은 기록들 속에서 우연히 드러난 틈을 어렵게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틈을 찾아낸 역사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바라보았다. ‘타타르의 멍에Tatar Yoke’라고 하는 유명한 용어가 상징하는 바는 러시아 역사에 전형적인 고정관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의 출간 의의는 척박한 땅에 내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에 비유될 만하다. 컬럼비아대에서 중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분야에서 여러 저술과 9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보기 드문 전문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러시아의 기록들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봤으며, 민족-종교적 접경지대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양자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 있었던 중세 러시아
저자에 따르면 몽골 시기에 중세 러시아는 두 개의 광범하면서도 조화되지 않는 세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러시아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접경에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었다. 동방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면, 러시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