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A Summary
강릉 이씨가李氏家의 삼백 년 역사
1. 강인한 여인, 권씨부인權氏夫人 17
2. 이내번李乃蕃, 선교장을 열다 22
3. 이후李, 만석꾼을 이루다 30
4. 이용구李龍九·이의범李宜, 관직에 나아가다 41
5. 서울에서 벼슬한 이회숙李會淑·이회원李會源 형제 45
6. 선교장의 전성기를 이뤄낸 이근우李根宇 48
7. 선교장, 역사의 격동기 속으로 들어가다 54
8. 열린 선교장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64
선교장, 그 대장원大莊園의 건축과 아름다움
1.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명당明堂 71
2. 확장과 변형을 거듭해 온 선교장 건축의 특성 77
3. 대장원의 공간구성 88
안채와 동별당 90 / 사랑채와 열화당 96 / 행랑채 103 / 서별당과 연지당 106 / 활래정 109 / 외별당과 별채 116 / 사당 및 선영 120 / 곳간 및 동진학교 124 / 담장과 대문 126 / 방해정 133
배다리집 사람들의 경영철학과 문화
1. 나눔과 상생의 경영철학 137
실리경영 137 / 나눔과 상생경영 142 / 공익경영 145
2. 정원과 조경의 아름다움 149
누정 149 / 나무 155 / 꽃 159
3. 시詩와 서書의 풍류문화 168
시문詩文 168 / 서예書藝 175
4. 장서藏書와 출판의 인문정신 185
독서 및 장서 185 / 저술 및 출판 188
5. 차문화와 내림손맛의 전통 192
차茶 192 / 음식 194
주註 201
참고문헌 203
선교장 장서목록藏書目錄 205
찾아보기 224
선교장(船橋莊은 강원도 강릉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고택(古宅으로, 이 책은 역사학자 차장섭이 오랜 기간의 자료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엮은 한국의 대표적인 양반가(兩班家 이야기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교장이 건립될 무렵부터 현재까지의 이 집안의 역사,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 상류주택이면서 특색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축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안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경영철학과 문화이다.
선교장의 역사는 전주이씨 효령대군 십세손(十世孫 이주화(李?華, 1647-1718에게 시집을 간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인이 남편과 사별하고 시가(媤家인 충주에서 친정인 강릉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강인한 여인 안동권씨는 경포대가 있는 강릉의 북촌에 자리잡았는데, 함께 온 아들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은 어머니와 함께 염전(鹽田 경영을 통해 선교장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지금의 집터를 잡아 1760년대에 선교장을 건축하기에 이른다.
그의 손자 이후(李?, 1773-1832는 집안을 만석꾼으로 일구어 놓았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 들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선교장을 기반으로 하여 한양 재동 집을 동시에 경영해 나가기 시작했고, 당시 정치사회적 집권세력의 가문과 혼인함으로써 중앙의 주류사회에 합류하였다.
이회숙의 아들 이근우(李根宇, 1877-1938는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선교장을 대규모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사회적 공동체로 발전시켰으며, 1908년 근대학교인 동진학교(東進學校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선교장은 1950년 시행된 농지개혁법과 화폐개혁,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1967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고, 후손들의 건축물 복원과 열린 경영에 힘쓰면서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전형적인 양반 상류주택인 선교장은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크다. 현재 남아 있는 본채의 규모는 건물 9동에 총 102칸이며,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