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제1장 위진-수당시대 호족군주의 중화제왕으로의 변신 과정과 그 논리 ―‘다민족국가’ 형성의 한 계기에 대한 탐색―
Ⅰ. 머리말
Ⅱ. ‘중화’제왕의 조건
Ⅲ. 오호십육국의 성립과 중화의 다원화
Ⅳ. 북위의 ‘한화’와 그 과제
Ⅴ. 서위-북주시대의 ‘중화화’ 시도
Ⅵ. 중화제왕의 탄생과 신중화주의
제2장 중화의 분열과 인근 각국의 대응 ―‘다중적’ 중화세계의 성립―
Ⅰ. 머리말
Ⅱ. ‘도이(島夷·삭로(索虜’에서 ‘피차(彼此’의 관계로
1. 중화의 ‘도이’·‘삭로’로의 분열과 ‘각제일방(各帝一方’
2. ‘피차’관계로의 변화와 복수 중화의 성립
Ⅲ. ‘황예(皇芮’ 유연(柔然의 ‘광복중화(光復中華’와 ‘오막(吳漠’ 양 세계의 선언
Ⅳ. ‘새표(塞表’의 강부국 토욕혼(吐谷渾의 ‘가한’ 자칭과 양조견사(兩朝遣使
Ⅴ. 동방 각국의 ‘중화’ 자칭과 ‘다중적’ 세계관
제3장 이적에서 중화로 ―‘황제천가한’의 출현 과정과 그 의미―
Ⅰ. 머리말
Ⅱ. ‘황제’와 ‘황제천가한’
1. 황제의 ‘관대지실(冠帶之室’과 선우의 ‘인궁지국(引弓之國’
2. ‘황제천가한’과 소릉(昭陵·건릉(乾陵의 번신상
Ⅲ. ‘화이분별’에서 ‘화이대동’으로
1. ‘사융론(徙戎論’에서 ‘실위오민론(悉爲吾民論’으로
2. ‘혼일육합(混一六合’에서 ‘호월일가(胡越一家’로
3. 중화의 다중화와 가한권역(可汗圈域의 서남진(西南進
Ⅳ. 이적에서 중화로의 변신
1. ‘융적이류(戎狄異類’ 탈피 과정 2. ‘오비오호(吾非五胡’의 언설과 그 논리
3. 탁발왕조에서 중화제국으로
제4장 동위-북제시대 호한체제의 전개 ―호한갈등과 이중구조―
Ⅰ. 머리말
Ⅱ. 호한갈등의 소재
1. ‘한화’와 ‘반한화’ 세력의 대립
2. 문·무 세력의 분화
Ⅲ. 양도제와 이중구조
1. 선비인의 제2의 ‘향리’: 진양
2. 제2의 낙양: 업도
Ⅳ. 유목형 군주하의 호한세력의 추이
1. 황위 계승 형식
호한체제란 무엇인가?
저자는 위진남북조-수당시대를 강의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시대의 흐름에 대한 중요한 특징을 찾고자 하였고, ‘호한체제(胡漢體制’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호한체제’란 후한 말 이후 중국 서북방 유목민족(호족이 중원 지역으로 진입한 후 그곳에 살고 있던 농경민족(한족과 대립?충돌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종국에는 공존의 길을 찾아간 기나긴 역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세계제국인 수당의 문명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후한 말부터 시작된 중국사상 최초의 ‘민족 이동’은 중국의 역사 전개에 새 국면을 열었다고 말한다. ‘중국고전문명’이 질적인 면에서 아주 다른 차원의 유목문화와 대면하게 된 것으로, 위진남북조에서 수당에 이르는 시기는 단순히 중국적 전통왕조의 계승이 아니라 ‘새로운 중국’ 형성의 과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기존 학계의 연구 경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기존의 학계에서 견지해 온 입장, 즉 ‘흡수론(吸收論’적인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모든 문명의 원류는 화하(華夏에 근원하여 발전한 것으로 호족의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일방적 관점이라 지적하며 이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생겨난 이론이 이른바 한화론(漢化論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국내외 학계에서 저자의 견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고, 중국학계에서도 심도 깊은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호한체제의 정치적 전개 과정
위진남북조-수당시대의 호(胡와 한(漢의 관계는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호한체제의 정치적 전개 과정이다. 이전 호와 한이 별개 영역에서 거주하며 한정된 교섭관계를 갖다가 중원이라는 동일한 토지 안에서 긴밀하게 접촉, 교류하게 됨에 따라 옛 제도를 변경하여 호와 한이 동의할 수 있는 체제를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통합 과정을 주도한 것은 호족 출신 군주였다. 그러나 호족 군주들은 우선 한족들로부터 중화 군주로 승인받아야 했고 호족과 한족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