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 4
제Ⅰ편 서술 및 편찬 원칙의 새로운 파악 ● 15
제一장 《고려사》의 ‘참의지사僭擬之事’와 ‘대사천하大赦天下’의 ‘이실직서以實直書’ : 핵심이 삭제된 고려의 황제제도……………17
1. 머리말 _17
2. ‘참의지사’의 개서改書.직서直書 논쟁 _23
1 ‘참의지사’ 서술 문제의 대두 _23
2 개서와 직서의 논리 _28
3. ‘직서’ 원칙의 한계 _37
1 적용 예외 확대 : ‘대사천하大赦天下’의 변개 _37
2 원초적 한계 : 금기어禁忌語 고려 황제.천자 _41
3 《수교고려사》에 대한 반발과 편사 중단 _57
4. 《고려사》의 ‘황제제도’ 직서의 실상 _64
1 편찬 재개와 직서 원칙의 확인 _64
2 편찬 작업 방식의 변화와 내용 확충 : 《고려사전문》 _69
3 선행 성과.한계의 종합적 승계 그리고 약간의 진전 : 《고려사》 _77
5. 맺음말 _86
제二장 새 자료들로 보완한 《고려사절요》와 《수교고려사》의 재인식…89
1. 머리말 _89
2. 〈고려사절요》의 〈범례〉와 《수교고려사》 _93
3. 세종 대 《수교고려사》의 사인私印과 활용모색 _104
4. 《고려사절요》 기사에 적용된 두 가지 ‘직서直書’ _108
1 《고려국사》의 유산과 《수교고려사》의 《고려실록》 기사 첨가
_108
2 《수교고려사》의 삭제에 의한 소극적 직서 _118
5. 《고려사절요》와 《고려사》의 다른 내용과 그 배경 _123
1 기사 내용 차이의 한 가지 예: 졸기卒記 _123
2 《고려사》와 다른 《고려사절요》 기사와 두 가지 〈본초本草〉
_127
6. 맺음말 _132
제Ⅱ편 사료비판과 고려시대 연구의 새로운 과제 ● 135
제一장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재인식과 한국사학의 과제…137
1. 머리말 _137
2.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이본들에 대한 이해와 이용 실태 _141
3.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적용에 대한 이
Ⅰ. 통천관: 고려 황제제도의 증거
제목 그대로 따분한 책일 것이라는 짐작은 첫 장을 넘기면서 사라진다. 15세기 전반에 고려의 황제제도 서술 문제를 놓고 벌인 격렬한 논쟁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정도전 이하 변계량 등 신료들이 고려의 황제제도는 ‘참람한 흉내〔僭擬之事〕’에 불과하므로 역사서술의 ‘개서改書’를 주장하지만, 세종은 제한적이긴 하나 ‘직서直書’ 논리로 사서 편찬을 지휘해 나간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춘추필법을 내세운 주자학적 사대명분론 대 ‘이실직서以實直書’의 원칙론의 대립이다. 조선 전기 현실 정치의 내막과 사서 편찬을 둘러싼 줄다리기 속 이념에 치우친 신료들의 경직된 모습만큼이나 세종의 날카로운 정세 인식과 ‘역사를 멀리 보는 안목’이 더욱 돋보인다.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태조 왕건상의 존재를 간취해 냈던 저자는 이번에 고려 역사에도 정통했던 현군 세종의 면모를 재입증한다. 천하다원론자 왕건이 세운 고려의 외왕내제外王內帝는 부분적이었다 할지라도 후대 사가들의 입김에 의해서 지워질래야 지워질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다. 당唐 양식이면서도 독창적인 면모를 갖춘 통천관이 그것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Ⅱ. 태조 왕건상: 유교적 서술에 가려진 토착문화
‘제한적’ 직서 원칙에 따라 서술된 《고려사》에 대한 맹신은 황제제도의 실체뿐만 아니라, 유교문화 과장 서술에 대해서도 눈감게 만든다. 역사기록에서 화이사상, 사대명분론과 같은 이념의 그늘이 두드러질수록 고려의 실상과는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역사서술에서 거의 배제되다시피 한 토속적 예속, 토풍土風을 찾아내 다시 한 번 사서의 견고한 성을 붕괴시킨다. 연등?팔관회, 선랑 등의 국풍國風(=土風은 화풍華風(=唐風론자 최승로 등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되어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고려문화에서 그 비중과 저변은 매우 광범하였다. 최상층 문화에까지 스며든 토풍의 대표적 예가 바로 고려 태조 왕건상이다. 왕건상은 나신조각상을 숭배한 고구려 동명신앙의 토속제례문화의 현현이자 전륜성왕의 불교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