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 이후 엘리트의 진화 : 능력주의 신엘리트의 등장
1993년, 올리브색 피부의 열네 살 소년 칸은 처음 도착한 세인트폴 스쿨 기숙사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다. 예상과 달리 기숙사가 온통 흑인과 라틴계 애들뿐이었던 것. 하지만 이는 그 기숙사가 유색인 학생들만을 따로 모아놓은 ‘소수학생 기숙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나머지 기숙사들은 온통 백인 명문가 자제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학교 측의 인종차별적 조치 때문이 아니었다. 학교는 이 기숙사를 없애고 그들을 다른 백인 학생들과 함께 거주하도록 할 작정이었으나 이를 반대한 것은 오히려 유색인 학생들이었다. 유색인 학생들은 그곳의 백인 엘리트 학우들 사이에서 “불편”했고, 고향 동네에서처럼 자기네들끼리 있는 게 속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졸업 후 9년 만인 2004년, 교사로서 엘리트 연구를 위해 모교에 돌아간 칸은 충격적인 변화를 목격한다. 여전히 백인 명문가 부유층이 지배적일 거라는 그의 예상을 깨고,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립된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세인트폴의 인종적·계급적 다양성은 더욱 증가했고(“빈자와 부자, 흑인과 백인,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교실과 운동장, 댄스파티와 기숙사, 그리고 침대에서 청소년기를 공유”, “이미 성공의 열쇠를 쥔 양 행동하는” 특권층 아이들은 “세인트폴의 치부”로 여겨지며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학생들은 이런 학생들의 입학 경위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이 여기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도 이들은 기존의 엘리트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랐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과 문화, 인맥 주변에 장벽을 두르고 고급문화, 고급 취향을 구분지으며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폐쇄적인 엘리트들이 아니었다. 전세 비행기를 타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와서는 랩음악을 즐기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방성과 문화적 잡종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 내놔도 평범한 미국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