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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눈꺼풀 - 소설의 첫 만남 16
저자 윤성희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0-07-24
정가 8,800원
ISBN 97889364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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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작가의 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치는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야기는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던 날에서 시작한다. 그때 아빠는 서른여덟 살로 젊은 시절을 한 고비 넘긴 나이의 독신이었고, 엄마는 홀로 여섯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처지였다. 형편이 어려워 친척에게 딸을 맡기고 오는 길이던 엄마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아빠의 옆자리에 앉는다. 만약 엄마와 아빠가 그날 기차의 같은 호실에 타지 않았다면, 사고로 정차한 기차에서 내려 함께 식당까지 걷지 않았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나’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을까?
‘나’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와 누워 있다. 살아 있다는 의식은 있지만 눈을 뜰 수는 없고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사고 이후 일상의 시간은 멈춰 버렸고,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주변의 풍경과 자신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오전과 오후 교대로 병간호를 하러 오는 엄마와 아빠는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오래전 조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느낀 감정, 누나를 홀로 키운 엄마의 아픔,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상처들. 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풍기는 정 깊은 멸치국수 냄새처럼 마법 같은 고백들이 오감을 일깨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낮과 밤을 채워 주는 생명의 순환처럼 흐른다.


“세상에 시시한 건 없어.”

‘나’의 기억은 사고를 당하던 그날로 회귀해 간다. 친한 친구에게 바람을 맞고 속상한 마음을 가누며 외로이 자전거를 끌던 며칠 전으로. 평소에 친구와 가고는 했던 동네가 아니라 낯선 길로 빠졌었다. 버스 정류장이었고 옆에는 한 꼬마 아이가 앉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버스가 차선을 넘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지워졌다.
‘나’가 궁금해하는 건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던 꼬마 아이는 무사한지이다. 벌어진 일에 절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타인의 불행을 먼저 걱정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