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 흩어진 사람들에게
프롤로그 · 도래하지 않은 혁명의 유산들
1부 사회운동의 풍경
1장 1991년 5월 투쟁과 1968년 혁명의 재구성
2장 민주화 세대의 역사적 좌표
3장 1990년대 전향 담론과 반지성주의
4장 최장집의 민주화 기획을 비판한다
5장 자투리 인간들은 어디로?
- 세계체제 위기와 개인의 정체성
6장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돌파를 위해
2부 정치철학의 풍경
7장 한국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수용 과정과 쟁점들
8장 알튀세르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 라클라우와 지젝의 논쟁을 중심으로
9장 한국 라캉주의 정치의 가능성과 조건
? 지젝의 ‘사회적 환상의 횡단’ 개념을 중심으로
10장 정신분석에 적합한 정치는 무엇인가
11장 현실 민주주의와 정치적 행위의 딜레마
12장 좌파 포퓰리즘은 가능한가
13장 한국적 마르크스주의의 길
? 정운영 10주기를 기억하며
에필로그 · 애도의 정치와 멜랑콜리 주체
1991년 5월, 혁명의 시대가 막을 내리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의 폭행으로 사망했다. 곧이어 4월 27일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지 분쇄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었다. 그렇게 1991년 5월 투쟁은 시작되었다. 1980년대를 5·18 광주항쟁과 6월 항쟁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1991년 5월의 일들은 역사의 먼지와 같은 사건일지 모른다. 당시 공식적인 명칭 없이 ‘분신 정국’이라 불렸고, 뒤늦게 ‘1991년 5월 투쟁’이라는 다소 애매한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기억을 소환하자면, 당시 백골단의 폭행으로 명지대생 강경대가 사망하고,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사를 당했으며,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강경진압으로 사망했다. 전남대생 박승희를 비롯해 김영균, 천세용,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차태권, 정상순, 이진희, 석광수 등 학생, 노동자, 빈민 11명이 연이어 분신했다. 불과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에 14명이 사망하고 전국적으로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그것은 여전히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5·18의 학살자들과 5공화국 독재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제2의 6월 항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급진적 민중운동의 마지막 필사적인 저항과도 같았던 1991년 5월 투쟁은 갑자기 소멸했다. 그 이유가 연속적인 분신의 배후에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검찰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조작된 허구를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했던 것은 서럽고 처절한 투쟁이 그만 종결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제2의 6월 항쟁’이라고 불린 1991년 5월 투쟁은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로 거리의 정치를 복원했다. 하지만 그 패배의 효과는 혁명적 분위기가 범람하던 정치적 시공간의 봉합으로 나타났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구좌파적 반체제 운동이 1848년 혁명에서 출발해 1871년 파리코뮌과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