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폭력적 약탈’보다 나쁜 ‘합법적 약탈’ ? 5
01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진보좌파는 가짜다 ? 15
02 프랑스혁명과 노예해방 혁명보다 위대한 혁명 ? 18
03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 ? 21
04 철거민을 쓰레기차에 실어 내다버린 재개발 정책 ? 27
05 서민의 ‘환한 기쁨’을 박탈하는 ‘악의 평범성’ ? 31
06 정부가 주도한 부동산 대사기극 ? 34
07 “차라리 공산주의 세상이 더 나은 게 아닌가?” ? 38
08 허공으로 날아간 토지공개념 ? 42
09 “시골 고향에서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 46
10 전셋값이 한 달 새 3배나 뛴 부동산 투기 광풍 ? 51
11 중산층의 이기주의와 허위의식 ? 55
12 아파트가 인간의 품격을 말해주는 시대 ? 59
13 “친북좌파보다 못한 일부 강남 부자들” ? 62
14 “우리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경축하는 요지경 세상” ? 67
15 부자의 80퍼센트 이상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나라 ? 71
16 부동산 문제에선 진보는 ‘수구 세력’ ? 74
17 서울은 ‘부동산 약탈 도시’ ? 77
18 “투기 방조당, 투기 조장당, 투기 무관심당” ? 80
19 왜 진보는 부동산 약탈에 무관심할까? ? 83
20 진보 지식인의 부동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 86
21 한국의 대표 미녀들을 앞세운 아파트 광고 ? 89
22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 ? 92
23 한국의 6개 주택 계급 ? 95
24 ‘부동산 계급사회’의 ‘투기 테러리즘’ ? 99
25 대학 입시도 부동산이 결정한다 ? 102
26 “부산에 남으면 희망이 없다” ? 105
27 부동산 투기 ‘삼각동맹’ ? 108
28 재개발 조합-폭력 조직-재벌 건설사-구청의 ‘사각동맹’ ? 111
29 “정부는 누구 하나 죽어야만 귀를 기울여요” ? 114
30 자기 못난 탓을 하는 무주택자들 ? 11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
서울시는 판자촌과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를 개발해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1969년 5월부터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 수는 14만 5,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시는 쓰레기 내버리듯 그들을 내팽개쳤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황무지였던 그곳에서 빈민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들은 일감이 없어 굶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굶주리다 못해 말하기조차 끔찍하게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 그들의 굶주림은 심각했다. 결국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 ‘토지 불하 가격을 인하해달라’, ‘일자리를 달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고 주민 23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 시위로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광주 대단지의 비참한 실상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 사이에 서울 후암동, 대방동, 이촌동 등지에서 철거민들을 쓰레기차에 싣고 와 갈대밭에 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윤치영이 철거민들을 향해 “이곳만은 손대지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보시오”라고 말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갈대를 뽑고 땅을 고르고 천막을 쳐서 갈대 대신 사람이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목동이었다. 1970년대에는 아현동 등에서 쫓겨난 빈민들도 목동에 내버려졌다. 그러나 10~20년 넘게 삶을 꾸려가던 빈민들은 1983년 4월 12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서울시가 토지공영개발 방식을 시도해 신정동과 목동에 신시가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 번 쫓겨나 간신히 목동에 정착했던 빈민들을 또 한 번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정부의 재개발 정책은 늘 빈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불이익을 안겨다주었다. 당국은 빈민들을 자꾸 도시 외곽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