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 윤대길(서울시 전통사찰위원 ― 4
머리말 ― 8
15세기 불교건축
- 명분으로서의 억불과 전통으로서의 불교
외유내불, 명분과 습관 ― 18
불교와 유교의 연합, 외유내불의 불씨 ― 20
효와 능침사 ― 24
15세기의 배치 계획 : 능침사의 부상
고려 말 남중국 간화선풍의 유행과 회암사 ― 28
조선 초 왕실원찰의 보편성 ― 35
태조의 흥천사 창건과 고려의 유습 ― 36
진관사의 수륙사 ― 38
조선 초 왕실원찰의 두 종류 ― 39
조선 초 왕실원찰의 대표성 ― 44
안마당에 면한 요사의 성격 ― 49
15세기의 구조적 건축형식 : 새로운 시대의 공포, 익공
건축형식을 구분하는 방법 ― 52
공포의 독자성과 가구법의 통일성 ― 56
공포의 다양함은 활발한 생명력이 원천 ― 62
16세기 불교건축
- 성리학의 완고함과 불교건축의 잠재력
사림의 등장과 기신재의 퇴조 ― 69
산릉제사의 두 가지 성격과 기신제의 정착 ―71
과거의 지위는 잃었지만 생활 속에서는 건재한 불교 ― 72
문정왕후와 보우, 그리고 불교 ― 74
수륙재의 성행과 불교에 대한 새로운 경험 ― 75
조선을 전후기로 구분하는 역사적 사건,
임진년 왜구들의 침략 ― 77
16세기의 배치 계획 :사라진 시기, 미지의 공간
청평사와 기신재 ― 78
사대부들의 원찰, 분암 ― 82
수륙재의 유행과 중심사역 ― 88
문루의 초기 형식 ― 90
16세기의 구조적 건축형식 : 부족함 속에 감춰 놓은 완성된 건축
익공과 다포의 각축, 주심포의 퇴장 ― 94
동아시아 건축에서 최고의 발명품, 익공 ― 102
공포형식과 가구법의 상관성 ― 104
17세기 불교건축
- 후원 세력의 교체와 사회의 보수화
새로운 전기를 맞은 불교계 ― 108
재조지은의 강조와 불교의 현실적 필요성 ― 110
17세기의 배치 계획 : 능침사의 복구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진정한 종교로 거듭난 불교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조선시대’와 ‘불교건축’은 잘 연결되지 않는 주제처럼 보인다. 고려시대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하던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척결의 대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대형 사찰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부를 축적하기 바빴던 불교와 그런 불교로부터 비롯되었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이들에겐 시급한 목표였고, ‘억불’은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그래서 조선사회를 ‘억불숭유의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불교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없어지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았다는 것은 불교가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말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이전 국가권력이 부여했던 사찰에 대한 특혜를 거둔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동안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방적 지원과 비호 속에서 성장한 것을 정상적인 성장이 아니라고 본다면, 비로소 불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단순히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았다고 이해하면, 그 시대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정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는 불교가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하향평준화가 되었다고도 하고, 철저하게 표리부동한 종교가 되었다고 하는 등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살아남으면서 불교는 진정한 종교의 자격을 갖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기존의 관점과는 사뭇 다른 저자의 이런 평가가 불교건축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귀족 종교에서 백성과 함께 호흡하는 종교로 거듭난 불교
민중의 주체적 역량을 담고 있는 조선시대 불교건축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