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 순이와 쌀 가마
나랏님 같은 구장 나으리, 동이네 어르신
뽕나무 심는 마을에서 추석날 태어난 성아
성아는 봄날이 좋다네요
오늘은 이상한 날
성아가 길을 떠나네
성아 없는 추석
꽃가마 탄 성아
주저앉은 어머니, 무너지는 하늘
봄에 떠나 겨울에 돌아온 성아
순이와 쌀 가마니
올해 성아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팔도에서 모인 청진 다이니치보의 ‘산업전사’
나는 열 두 살이다
공출이라고
도대체 ‘산업전사’가, ‘여자근로정신대’가 뭐란 말인가
높은 성 같은 청진 공장
우리가 마지막인가 보다
팔도에서 다 모였네
나라를 위해 천황폐하를 위해 실을 잣는 아이들
군복을 만들어라! 군복을!
감독의 채찍에 돌아가 벌인 매정한 와쿠
시도 때도 없는 손찌검
징용이어서 다행이라고
공습이다!
불타는 공장, 눈앞에 펼쳐진 고향 우리 집
세 번째 이야기 - 그저 햇살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으련다
나는 소녀입니다
나는 방적공장 꼬맹이입니다
우리도 사람인데요
그저 참고 있으라고 할 밖에요
그래도 햇살이 그립습니다
지옥철, 1945년 여름
드디어 열린 공장문
에필로그
일본이 저지른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에 동원된 조선인은 남성만이 아니었다. 여성들도 있었다. 전쟁터에서 병사를 돌본 간호부도 있었고, 일본군위안부도 있었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방적공장과 비행기부품조립공장, 탄광 등지에 동원되었다. 한국정부에서 피해자로 판정받은 여성노무자의 숫자만 해도 300명이 넘는다. 소녀들은 일본으로, 만주로 그리고 북선으로 갔다. 이웃 마을의 공장으로 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물론 학계에서도 이들을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 전쟁 피해자는 남성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에.
이제는 알아야 한다.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녀들이 봄날에 집을 떠나 군수공장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군수품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을. 성인에 맞춰진 기계와 작업 공정으로 인해 아동들의 사망과 부상율은 더 높았다는 것을. 전쟁이 끝난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소녀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기억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봄날은 간다 : 방적 공장 소녀, 징용』은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려는 첫 걸음이다. 일본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생산에 동원된 여성들, 그 중에서도 나이 어린 소녀들이 한반도의 방적공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봄날은 간다 : 방적 공장 소녀, 징용』은 강제동원&평화총서 담장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지독한 이별 : 1944년 에스토르』(담장 제1권보다 픽션의 비중을 늘렸다. 아동들이 전쟁 기간 중에 집을 떠나 한반도 이 곳 저 곳 군수공장에서 가냘픈 몸을 부려야했던 시절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림을 담고, 문장은 대폭 줄였다.
‘광주5.18민주항쟁은 북한군의 폭동’이고, ‘야스쿠니신사는 젠틀맨’이라는 학생들의 무지를 개탄하기에는 어른들의 불찰과 무책임이 뼈아프다. 역사대중화를 위해 탄생한 일제강제동원 & 평화연구회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이다. (프롤로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