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머리에:빈 체제를 정립한 실세 정치가의 행보
제1장 보수적인 청년 외교관
1.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년기
2. 슈트라스부르크 및 마인츠에서의 수업
3. 보수적 사상을 체득하다
4. 메테르니히의 여인들
5. 외교관으로서의 첫 행보
6. 파리 주재 대사
7.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
제2장 나폴레옹 시대
1. 외무장관 취임
2.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3. 해방전쟁의 시작
4. 제1차 파리 평화조약
제3장 빈 회의, 그리고 그 이후
1. 빈 회의
2. 4국동맹의 결성과 활동
3. 독일 연방의 결성
4. 카를스바트 협약
5. 독일 관세동맹
6. 함바흐 축제와 메테르니히의 대응
제4장 3월혁명, 그리고 실각과 복귀
1. 메테르니히와 페르디난트 1세
2. 빈 혁명
3. 메테르니히의 실각
4. 3월 정부의 출범과 과제
5. 메테르니히의 귀환
6. 메테르니히와 신절대주의 체제
제5장 메테르니히 사후의 오스트리아
1. 신절대주의 체제의 붕괴
2. 형제전쟁
3. 이중 체제의 도입과 독일제국의 등장
? 나가면서:현실정치가로서의 한계를 인식한 메테르니히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메테르니히 하면,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가로서 나폴레옹 이후 각국의 사후 처리를 논의한 빈 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유럽의 반동적 움직임을 이끈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보수적 행보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위상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정복전쟁이 전 유럽에 뿌린 자유 및 평등사상으로 유럽의 민중은 들썩거렸고, 민족주의의 열풍 역시 강하게 확산되었다. 보수주의자였던 메테르니히는 그것을 탄압하고 오스트리아의 국익을 위해 움직였다. 당시의 시대적 대세였던 독일권 통합의 움직임 속에서도 그 주도권을 오스트리아가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흐름으로 봤을 때 메테르니히의 정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테르니히:국익을 우선한 현실정치가』는 인간 메테르니히의 ‘한결같은(?’ 행보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며 그의 긍정적인 면까지 재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