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 잡담(雜談과 빙고(憑考
조선시대에 각종 권리의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여러 고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공물주인, 도장주인, 여객주인 등 각종 주인권이 새로운 재산으로 등장했으며 그 매매의 증빙 역시 문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17~19세기의 경기·충청 지역에서는 여객주인의 권리가 창출·유통·집중되었으며, 때로는 그 권리를 둘러싼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특히 권리의 소유관계가 불명확한 경우에 소송(訴訟이 제기되기도 하는 등의 방식으로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권리의 형성 또는 이전에는 언제나 ‘잠재적 갈등’이 내포되게 마련인데, 조선시대의 매매문기에서는 이를 주로 ‘잡담(雜談’이라 칭했다. 요즘의 잡담은 흔히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나 중요하지 않은 말로 정의되곤 하지만, 조선 후기 문서에서 일종의 투식(套式과 같이 표현된 ‘잡담’은 ‘딴소리’ 또는 ‘허튼소리’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계약 사항을 부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잡담’이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잡담’이 발생하면, 즉 누군가가 매매나 상속의 결과로서 귀속된 소유권에 대하여 승복하지 않고 분쟁을 야기하게 되면, 당사자는 자신의 권리를 입증하기 위해 증빙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증빙의 대표적인 수단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증인과 문서의 두 가지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증인을 동원하여 증언하게 하기 어려우므로, 문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각종 문기에서 그러한 증빙의 행위를 일컬었던 당대의 표현이 바로 ‘빙고(憑考’였다. 이처럼 매매문기를 비롯한 각종 문서는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빙고’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달리 말하자면 갈등의 해결을 모색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문서’를 통해 풍요로운 조선의 기록문화를 재조명한 <잡담과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