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말 다카사키 소지
책머리에
한국인에 의한 야나기 무네요시 연구사 가토 리에
제1부 한국에서의 야나기 무네요시의 활동
제1장 경성의 음악회 가지야 타카시
─「조선민족미술관 설립후원 야나기 가네코의 음악회」의 여러 양상
제2장 시라카바미술관에서 조선민족미술관으로 가지야 타카시
제3장 아사카와 노리타카ㆍ타쿠미 형제의 조선 이해 이상진
─일제 식민지기의 형제의 조선전통공예연구를 중심으로
제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예술론
제1장 세키노 타다시의 조선미술사론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미술사관 가지야 타카시
제2장 조선민족미술관과 Folk Art 구리타 쿠니에
─야나기 무네요시와 「상애(相愛」의 사상
제3장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개의 관심 다케나카 히토시
─미, 사회, 그리고 조선
제4장 야나기 무네요시의 인간부재로서의 ‘민예’론 읽어보기 이병진
제5장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과 ‘내셔널리즘’ 신나경
─‘일본의 미’론을 중심으로
제3부 한국에 수용된 야나기 무네요시
제1장 3ㆍ1독립운동 후의 조선 예술계와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과 그 예술』을 둘러싼 시론
가토 리에/박승주 역
제2장 사상의 변용과 예술적 공명, 『폐허』 동인과 야나기 무네요시 조윤정
제3장 광화문ㆍ해태를 둘러싼 담론과 야나기 무네요시 권석영
역자 소개
나는 그 예술을 통하여
조선에 두터운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민족이여, 주어진 운명을 인내하라,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그 운명은 온기로 따뜻해질 것이다
일본인으로서 조선의 미를 생각한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촉발된 독립만세운동을 일제는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얼마 뒤, 『동아일보』에 한 일본인이 두 개의 글을 게재한다. 「조선인을 생각한다」와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3ㆍ1운동과 일본인. 한국인이 이 두 단어를 듣고 떠올릴 수 있는 조합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한 방향으로만 몰릴 것이다. 그러나 이 일본인이 쓴 글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일제의 무력 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는 조선에 대한 깊은 동정과, 폭력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려고 하는 일본 관헌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이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 공예품(조선시대 백자과의 만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민예(=민중적 공예’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개념을 통해 그는 ‘민예운동’을 시작했고, 「조선인을 생각한다」를 시작으로 조선예술론을 전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 그 예술』 등의 책을 썼다. 그는 조선의 막사발 등을 두고 ‘무기교의 기교’, ‘비개성의 개성’이라고 찬양했으며, 총독부가 광화문을 철거하려고 했을 때 이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1921년에는 조선과 일본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또 산실되는 조선의 예술품을 보호할 목적으로 아사카와 타쿠미와 함께 경성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이를 위해 그의 아내인 야나기 가네코는 조선에서 여러 차례 음악회를 열었다. 『동아일보』의 주최와 홍보 속에서 경성뿐 아니라 개성, 평양, 진남포 등 각 도시를 순회하며 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