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00여 년이 경과하였다. 이제 이 땅에서 당시의 삶이 어떠했는지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유무형의 기록뿐이다. 구전이나 문헌 또는 유물이나 유적이 전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편집이나 부식(腐蝕 또는 왜곡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경제생활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작업이 하나의 길로만 진행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조선 후기 국가재정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형태의 자료 또한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國家의 실체로서의 왕가(王家가 남긴 자세하고 일관된 기록이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남겨져 있다는 점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조선 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소명출판, 2016은 조선 왕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회계 기록을 발굴하고, 소개하고, 분석한 사실상의 첫 시도이다. 왕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국가재정과 지방 재정, 그리고 나아가 조선 경제에 대한 다면적 접근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왕실의 회계 장부를 해부하다
이 책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후기 왕실의 경제 행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고스란히 남아 전하는 방대한 분량의 회계 장부를 속속들이 파헤친 결과, 공식적으로 파악되지 않던 왕실의 내밀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국가 재정 차원에서 면세의 혜택을 누리던 왕실의 경제생활은 토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원천으로부터의 수입에 기반하여 다양한 물자를 구입하여 소비하는 방식으로 영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운영의 실무는 내시와 궁녀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관료 또는 사대부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 왕실의 창고를 들여다보다
100년 이상의 오랜 기간을 대상으로 왕실의 재정 운영이 변화한 양상을 살펴본 결과, 왕실 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