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근대, 공재성에 대하여
이 책의 총설에서 사카이 나오키는 근대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우선 그것은 연대기적 시대를 초월하며, 둘째, 오늘날 우리 세계관을 제약하는 틀이며, 셋째, 인종?민족?국민이라는 민족-언어통일체를 만들어낸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근대는 인류의 긴 역사 중 어떤 시기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떤 사고 체계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발전사관의 바탕에 깔린 근대와 전근대, 서양과 비서양의 구분은 본질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이다.
인종.민족.국민이라는 근대적 관념을 통해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않는,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사카이 나오키는 “개인적인 관계로 형성된 정체성”에 따라 사람을 자리매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개인적인 관계를 만드는 과정은 바로 “같은 시간을 사는 것”, 즉 공재성의 과정이다. 그러한 공재성의 경험들이 제거된 채, 근대의 관점에서 재편성된 역사와 학문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더 넓은 인문학을 향한 새로운 시도
이 책이 보여주는 근대는 일방향의 단선적인 기획이라고 하기 어려운, 다양하고 이질적인 상호작용이다. 그러한 복잡성을 모두 제거한 채 단순한 발전사관으로 근대를 바라보는 일은 학문계에서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를 다시 묻고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그 복잡성 안에 내재된 가능성과 한계를 발견해보려는 시도는 그리 흔치 않다. ‘근대 일본의 문화사’ 시리즈는 그러한 시도를 실행하기 위해 최적의 연구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이 시리즈가 감행한 또 하나의 도전은, 바로 근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여러 학문 분야 학자들의 영역횡단적 결과물을 모아 함께 출간했다는 사실이다. 학문 분야 간에 벽이 높은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거의 최초라 할 만한 일이라고 이와나미쇼텐에서는 자부심을 담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