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추천의 글_ 우리는 어떤 자세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까요?
시작하며 1_ 한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시작하며 2_ 이회영 선생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1부 한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1 이항복이 이회영의 할아버지라고!
푸른 바위가 흰 구름에 깊이 잠겼다 | 명동1가 1번지와 상동
2 누가 헤이그 특사를 주도했을까?
황제의 도서관, 망국의 장소가 되다 | 이회영, 을사늑약을 저지하고 반대하다 | 이회영, 헤이그 특사를 기획하다 | 헤이그 특사, 타국에서 지고 조국에 묻히다 | 난잎으로 칼을 얻다
3 망국 후 이회영은 어떻게 했을까?
대지의 눈과 거꾸로 선 동상 |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 | 독립운동과 하야밥 | 이 난을 사귐의 증표로 삼는다
4 가족 또한 고초를 겪었다는데!
북이 운다 종이 운다, 북경의 겨울밤에 | 하도 처량하여 눈물이 절로 난다 | 이 칼로 너희 두 놈을 죽이고 가겠다 | 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쳐 | 조금도 조롱에 개의치 않는다
5 이회영 선생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눈은 차마 감지를 못하시고 | 아직은 나 있는 곳에 못 오네 | 강화학 최후의 광경 | 이성과 지혜를 밑받침으로 한 정열 | 정성이 하늘을 움직였다 | 독립운동가의 영광된 상처
2부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1코스 우당기념관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까지
이회영 선생 동상을 만나다_우당기념관 | 우리 할아버지 살던 옛집_필운대 | 은행나무 아래, 권율 장군 집터 | 통곡의 미루나무를 찾아서_서대문형무소역사관 | 행촌동 1번지의 랜드마크_딜쿠샤
2코스 덕수궁에서 남산 백범광장까지
치욕과 설움의 역사가 시작된 곳_중명전 | 어머니의 강인한 발걸음이 깃들다_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독립운동의 기지_상동교회 | 쌍회정터를 지
일제 지배로부터의 독립,
모든 독재적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 아나키스트 우당 이회영!
우당 이회영 선생은 열린 사고로 시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특권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이를 기꺼이 포기하고 평등을 실천하셨다. 그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항일투쟁 내내 끝없는 기획과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외교를 통한 구국 운동과 백성을 깨치는 계몽운동, 나아가 독립운동을 위한 무관학교 운영과 직접행동에 나선 의열투쟁까지 거의 모든 독립운동 방략이 이회영 선생을 통해 시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베이징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면서 자금성 인근에 있는 이회영 선생의 옛 거처를 찾았던 발걸음이 첫 답사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이회영 선생의 삶에 대한 존경, 뒤늦은 앎에 대한 송구함으로 일관된 답사는 5년 만에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성과 지혜를 바탕으로 불꽃처럼 살다간 이회영 선생의 흔적을 더듬는 답삿길은 우리의 헛헛함을 달래고 초심을 되찾는 순례길이 될 것이다.
항일투쟁의 별,
중국에서 지고 조국에서 빛나다!
백사 이항복 선생 이후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낸 최고의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가족보다는 동포, 동포 개개인보다는 조선 민족 전체를 더 마음에 둔 이회영 선생의 위대한 삶이 1부에서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역사적 사건, 중요한 인물, 핵심 공간의 조화로 펼쳐진다.
왜적이 차지한 땅에서는 단 하루라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의기로 이회영 선생이 선택한 것은 6형제 전체의 망명이었다. 그것은 기득권과 영광은 포기하고 의무와 고난은 감내하는 무섭고 무거운 여정이었다. 36년간 타국에서 풍찬노숙하다 결국 일제에 잡혀 뤼순감옥에서 비장하게 생을 마감한 이회영 선생은 그렇게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회영 선생의 흔적을 더듬는 답삿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