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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
저자 김상숙,박은성,임채도,전명혁,한
출판사 푸른역사
출판일 2019-06-29
정가 20,000원
ISBN 979115612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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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쟁 전야: 이념 갈등 속의 민간인 학살

01―민간인 학살의 시발점, 대구 10월 항쟁
02―제주 4?3사건과 브레이크 없는 국가폭력
03―여순사건, 빨치산 토벌 과정서 희생 확대

2부 전쟁과 국가폭력

01―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1-1. 장기간의 치안 부재로 빚어진 비극의 현장, 고창 지역
1-2. 단기간에 최다 희생자를 낳은 영광 지역
1-3. 최대 규모 단일 집단학살사건의 현장, 당진읍 지역

02―예비검속의 희생자들
2-1. 국민보도연맹사건
2-2. 형무소 재소자 집단희생사건

03―부역이라는 누명을 쓴 사람들
3-1. 죽음의 섬 강화도
3-2. 45년 만에 드러난 고양군 금정굴에서의 학살

04―빨치산 토벌과 민간인 희생
4-1. ‘해방구’에서 벌어진 학살, 호남 지역
4-2. 토벌작전 활발했던 경남 산청?함양?거창 지역

05―난을 피하다 난을 만나다
5-1. 적으로 간주된 포항 지역 피란민
5-2. 무차별 폭격에 갇힌 소백산 피란민

3부 독재정치하의 인권탄압

01―시국사건
1-1. 진보당과 조봉암사건
1-2. 《민족일보》 조용수사건
1-3. 황태성사건과 박정희
1-4.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사건

02―간첩조작사건
2-1. 연좌제의 희생양들-월북가족 관련 간첩조작사건
2-2. 납북 귀환어부의 누명
2-3. 조국이 버린 사람들-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

03―인권의 사각지대
3-1. 녹화공작?강제 징집사건
3-2. 노동조합 탄압사건
3-3. 전향공작사건
3-4. 의문사사건

04―언론 탄압과 언론인 강제 해직
4-1.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
4-2. 1980년 언론 통폐합: 언론인들의 저항과 해직, 탄압

부록: 과거사 진실 규명 법안 제정 및 관련법 위원회 활동 연표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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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쌀을 달라”는 시위대에 발포

1946년 10월 1일 오전 10시 30분경, 대구부청 앞에서 여성과 어린이 중심의 시민 1,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성난 군중을 해산하려고 경관 1명이 공포탄을 세 발 발사했다. 군중은 더욱 분노하여 그 경관을 구타하고 도청 광장으로 이동하여 계속 시위를 벌였다. 대구공회당과 대구역 광장 일대에서는 파업 노동자와 100여 명의 무장경찰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친일 인사가 대부분이어서 시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경찰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발포했다. 노동자 1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1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틀 뒤 숨졌다.
이후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경찰서가 점령되자 장갑차를 앞세운 미군이 시내에 진입하고, 농민까지 가세하여 도 전역으로 항쟁이 확산되었다. 대구 10월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쌓였던 친일 경찰을 향한 분노가 미군정의 과도한 식량 공출정책에 따른 식량난과 겹쳐져 폭발한 항쟁은 경북 22개 군으로 확산되었다가 10월 6일경 대부분 진압되었다.
상황이 일단락된 후 사건 관련자뿐 아니라 사건과 무관한 민간인 상당수가 재판 없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 특히 경찰은 자신들이 항쟁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주민들에게 사적으로 보복하기도 했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도 상당수 민간인이 항쟁 관련자라는 이유로 학살되었다. 피해자 유족들은 경찰서에 남은 신상정보로 인해 연좌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대구 10월 항쟁, 민간인 학살의 시발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대구 10월 항쟁을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 당국에 맞서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정의하면서 이와 관련해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항쟁 진압 과정에서 비무장 민간인 상당수가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