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문주의로 교회를 읽는 이유
01 텍스트를 넘어서 콘텍스트를 읽다
나는 왜 인문주의자인가
교회여,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고민하라
한국 복음주의에 대한 성찰
부활의 현재적 의미
면벌부는 살아 있다
이제는 루터를 보내야 할 때
02 한국 교회를 넘어서 보편 교회를 고민하다
명성교회 세습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대중독재, 일상적 파시즘, 그리고 대형 교회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목회를 성직이라 믿는 이들에게
대형 교회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17세기 유럽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의 평행이론
03 배제와 혐오를 넘어서 포용의 공동체를 향하다
‘가나안 성도’를 재고한다
그들만의 유토피아, 그리고 배제와 혐오
배제와 혐오가 생산해 낸 괴물
어떻게 이슬람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종교인 과세와 차별금지법
개인의 영성을 넘어 형제애의 영성으로
04 개인 신앙을 넘어서 공적 신앙으로 살다
믿음과 불신 사이에 선 경계인
이제 인본주의자가 되자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소명을 해방하라
일상화된 엄숙주의를 넘어
그리스도인이여, 비판적 성찰을 하라
포스트모던 시대, 기독교 역사의식은 유효한가
에필로그: 개인을 넘어 공공을 지향하는 신앙
주
텍스트를 넘어서 콘텍스트로
자신의 주장을 지지할 근거로 성경 텍스트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면서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상황, 즉 콘텍스트를 읽어 내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교조적인 시각을 넘어설 수 없다. 텍스트 해석의 토대인 콘텍스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만 텍스트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오직 성경, 오직 은총’은 자칫 이 땅의 이웃과 주변의 고통과 아픔을 효과적으로, 또한 정당하게 비껴가기 위한 도구로 왜곡될 수 있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면서 콘텍스트를 외면한 태도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를 넘어서 보편 교회로
담임목회자의 설교와 리더십이 대형 교회 형성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담임목회자를 정점으로 하는 개교회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 이럴 경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장한 ‘우리’ 교회를 반대하는 일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위로 인식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종교적 인종주의’의 덫에 걸려 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타종교 등 타자에 대한 배려를 교회에서 찾을 수 없다. 이는 초대교회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일탈이다. 오늘 기독교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이슬람, 동성애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기독교의 외피를 입은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에 갇혀 있는 현실이다. 이제 우리 교회, 장로교회, 한국 교회를 넘어서 세계 교회, 보편 교회의 시각으로 콘텍스트를 들여다볼 때이다.
배제와 혐오를 넘어서 포용의 공동체로
사람들은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어지기에 인간의 의는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신의 전적인 은혜를 소리 높여 외치는 개인이나 신학 부류가 이 땅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양파 한 뿌리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뻔한 여인’과 흡사할 때가 많다.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걸 믿는다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