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루소의 국제정치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개인과 전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개별 국가도 살고 전체도 사는 답을 루소는 소국연합에서 찾아요. 국가연합이되 국가가 소국이어야 한다는 거죠. 하루 돌아다니면 누구네 집에 누가 아픈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서로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느 정도 나를 포기하고 일반의지로 가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소국이 강조된 거예요. 그러나 소국에서 조국애가 커지면 커질수록, 일단 전쟁 상태에 이르면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죠. 따라서 국제제도적으로도 개별 국가와 전체 국가가 함께 사는 합리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개별 국가와 전체 국가가 정체성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사회계약론』에서 사회계약과 조국애가 필요했던 것처럼, 국제정치론에서도 국제사회계약과 인류애가 필요하죠. _ 40쪽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핵개발을 선택하는 순간 부딪히는 경제적·기술적·군사적 압박이에요. 북한도 지금 제재를 힘들게 견디고 있지만, 현재 한국 경제의 규모와 개방화 정도를 고려하면 한국은 북한보다 그 압박을 견디기가 훨씬 더 어려울 거예요. 한국은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24개 가동해서 국내 전력의 30~4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수출 경쟁을 시작한 원자력 선진국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국제 원자력 기술의 협력 속에서 가능해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려면 핵연료주기의 안정적 운영이 필수이고, 농축 우라늄이나 중수소는 군사적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조건에서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요. 따라서 폐쇄체제인 북한과 달리 개방체제인 한국은 현실적으로 국제 제재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_ 68쪽
클라우제비츠는 순수하게 폭력의 논리에 충실한 절대전쟁이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현실전쟁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기 때문에 폭력 논리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