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초라하고 약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동화
사실주의 동화의 새 지평을 열어 보였다는 찬사와 함께 촉망받으며 등장한 박기범은『문제아』부터『미친개』까지 10년간 겨우 네 권의 동화책만을 펴낸 셈이다. 그는 왜 과작(寡作의 작가가 되었을까?
사실 박기범은 그간 어린이책 작가라기보다는 평화운동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만한 활동을 해왔다. 2003년 2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한국 이라크 반전 평화팀’의 일원으로 바그다드에 갔고, 그해 5월 귀국한 뒤로는 전국을 돌며 ‘전쟁과 어린이’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해 7월에는 전후(戰後 복구활동을 돕기 위해 다시 이라크에 갔다. 겁 많고 수줍음 잘 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면서도, 박기범은 “누구보다 전쟁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학살 앞에서 이라크 아이들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어서” 전쟁터로 달려갔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이라크와 한국에서의 평화운동을 기록한『어린이와 평화』(창비, 2005 같은 책을 썼고,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머니들 이야기로 2000년에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엄마와 나』(보리, 2004를 엮어냈다. 그러나 ‘동화작가’라는 자의식은 작가에게 늘 마음의 짐이었을 터.『새끼 개』 『어미 개』이후 근 4년 동안 동화를 발표하지 못하다가 “미치도록 이야기가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태어난 것이『미친개』이다. (작가의 개인 블로그 http://blog.paran.com/gibumi에서『미친개』를 쓰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담은 작업일지를 볼 수 있다.
박기범으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해준 것은 낮은 자리에 있는 초라하고 약한 존재들이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 만난 개 한 마리, 청와대 앞 전투경찰들이 둘러싼 가운데 드러누워 울부짖는 노신부님, 제 몸에 쇠사슬을 감고 버티고 서던 두 아이의 엄마,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추격을 피하다가 끝내 죽어간 살빛이 다른 청년, 휠체어에 불편한 제 몸을 묶어 거리로 나선 사람들, 군대 대신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