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보기

도서명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 근대의 문턱에서 조우한 유럽
저자 김미지
출판사 생각의힘
출판일 2019-06-30
정가 16,000원
ISBN 9791185585680
수량
들어가며 | 새로운 세계, 유럽을 발견한 첫 장면으로

1장 유럽과의 첫 만남과 첫인상
동과 서, 그 최초의 만남들
이양선, 눈앞에 나타난 불길한 존재
서양 문명의 첫 물결이었던 천주학과 서학
문헌으로 배운 구라파와 구라파인들
어렴풋이 상상해본 그들: 영길리와 불랑서

2장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시대, 《한성순보》가 포착한 유럽
중국의 개항과 대세의 이동
세계 속으로 들어간 조선 그리고 《한성순보》의 탄생
뉴스의 원천이 된 상해의 영국 조계 신문들
제국주의와 서세동점의 한허리를 관통하여
외신의 홍수 속에 사로잡힌 청불전쟁과 프랑스

3장 오랑캐에서 문명국으로, 우리가 발견한 유럽
세계사에 대한 관심과 구한말의 유럽 인식
새로운 문명의 향방과 유럽이라는 모델
각국 국민성에 대한 인식과 그 부침의 역사

4장 사상과 문화의 보물 창고: 근대 문화의 지향점이 된 유럽
시베리아 철도로 닿을 수 있는 그곳, 「세계일주가」가 노래한 유럽
유럽 문학을 통해 배우는 국민문학과 세계문학
문호로 불린 유럽 작가들,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작품들
문호 백년제: 20세기에 19세기 유럽 문학을 불러내는 방법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된 유럽 문학과 작가들

나오며 | 유럽이라는 우리 안의 타자, 그들을 통해 본 우리
유럽을 마주한 첫 장면
우리가 유럽이란 지역을 최초로 인지한 시기는 벨테브레(박연와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온 17세기일 것이다. 이런 우발적인 사건을 지나 18세기 중반부터 존재가 의심스러운 서양 배들이 한반도 연안에 출몰하며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 유럽은 우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는 대상이었다. 여전히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굳건하던 때였고 ‘요상하게 생긴’ 유럽인들은 한낱 오랑캐에 불과했다. 위협조차 될 수 없다고 여기며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의 유입은 막을 수 없었다. 역법이나 지도를 비롯한 과학기술은 정확하기 이를 데 없었고, 천주학은 금지하고 박해해도 기층 민중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추사 김정희는 서구 열강에 대해 “겁낼 것 없다”고 의연함을 표했지만 수백 년간 굳건하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흔들리고 있었다. 곧 청나라는 영국군에 수도가 점령당하고, 불평등한 강화조약을 맺는 굴욕까지 겪고 만다. 대세는 이동하고 있었다.

만국을 향한 최초의 창, 《한성순보》
중국을 통한 정보의 수집과 유통은 더 이상 속도와 정확성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 또한 뒤늦은 개항(1876 후 미국(1882을 시작으로 서양 국가들과 통상조약을 맺게 되면서 새로운 나라들과의 교섭과 소통이 불가피해졌다. 1883년 일본에 다녀온 수신사 박영효의 제안으로, 정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을 창간했다. 《한성순보》는 창간 취지에 맞게 외신을 번역해 보도하는 데 주력했고, 자체적인 관점을 견지하기보다는 청이나 영국 신문의 시각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예로 당시 영국과는 식민지 경쟁을 하고 인도차이나에서는 중국과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는 《한성순보》의 외신 보도를 통해 “교활하고 잔인한” 민족이나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묘사됐다.

《한성순보》는 비록 오늘날의 신문처럼 독자적인 취재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단순 보도를 넘어 논평과 같은 서술도 일부 보여주었다.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