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표인가:
대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처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의 현대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대표 체계의 성립과 더불어 탄생한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서구에서 대표 체계는 재산을 가진 (그래서 세금을 낼 수 있는 성인 남성에서, 전체 남성으로, 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로, 마지막으로 여성으로 대표 체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대표 체계는 현대 민주주의를 등장시키고, 작동시키며, 확대해 온 핵심 기제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가 말했듯, 오늘날 민주주의는 누가 투표할 수 있는가를 넘어, 어디에 투표할 수 있는가로 나아감으로써, 다시 말해 누가 대표되는가를 넘어, 어떤 주제가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재현(대표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의 확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 역시 달라지고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물론, 오늘날 지구화의 진전과 더불어, 누가 투표할 수 있는가, 누가 대표될 수 있는가는 또 다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과연 대표제(대의제는 ‘직접’민주주의보다 ‘열등’한
‘간접’민주주의에 불과할까
하지만 한국에서 대표 체계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쟁취되어 온 소중한 자산(실제로, 한국에서 투표권은 해방과 동시에 외세에 의해 일거에 주어진 것이었다이라기보다는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우며, 직접적인 인민의 통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대표제(대의제 민주주의는 시간이 걸리고, 상층 엘리트 편향적이며, 인민의 자치(직접 통치를 지연시키고, 민주주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 비해 열등한 ‘간접’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대표제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견해라 할 수 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제비뽑기 민주주의가 대표제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이상이라는 인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