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송본
가 미리 할 일
나 인연의 집약
다 단두의 집약
라 승잔의 집약
마 정해지지 않은 것의 집약
바 사타
사 단타
아 실토해야 하는 것들
자 공붓거리들
차 문제의 멈춤들
해설본
가 미리 할 일
나 인연의 집약
다 단두의 집약
라 승잔의 집약
마 정해지지 않은 것의 집약
바 사타
사 단타
아 실토해야 하는 것들
자 공붓거리들
차 문제의 멈춤들
부록 Ⅰ. 빨리어 『비구 급선무』 .. 490
부록 Ⅱ. 『비구니 급선무』 공부조목 일람 .. 549
부록 Ⅲ. 『빨리율』 비구·비구니 공부조목 대조표 .. 568
부록 Ⅳ. 6부율 비구·비구니 공부조목수 대조표 .. 570
찾아보기 번역 대조 .. 572
맺는말 『급선무』가 급선무다 .. 584
율(律을 통째로 바꿔버린 오역(誤譯과 우리가 성찰해야 할 지점
이 책에서 저자는 (구마라습을 비롯한 역경승이 한역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 그리고 한역을 다시 한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으로 그동안 율장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빨리율에 나오는 대목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사성제에 대해 예를 들고 있다. 고성제(苦聖蹄, 집성제(集聖蹄, 멸성제(滅聖蹄, 도성제(道聖蹄는 흔히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고성제는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다. 하지만 이런 해석 · 설명에 우선 입문자부터 당황을 한다. ‘괴로움 = 진리’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북방으로 넘어온 불교는 수천 년 동안 이런 번역을 고집해 왔다. 사성제의 빨리어 원문은 catt?ri ariya sacc?ni다. 이 중에 sacc?ni는 sacca의 복수형으로 ‘진실들’로 번역될 수 있다. ‘괴로움 = 진실’일 수 있지만 ‘괴로움=진리’일 수는 없다. 그런데 빨리어 경전을 번역하는 이들도 관례에 따라 사성제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번역하다보니 급기야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버려야 한다.”(상윳따 니까야 9-411로 번역한다. 졸지에 불교를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괴로움이라는 종교, 진리를 없애려는 종교가 되어 버린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한역 과정과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의 오역 그리고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는 초기경전의 오역까지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를 통해서 저자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 당시의 ‘의도’와 ‘실천’이다.
이런 추적과 관찰은 결국 어지러워진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로 향한다. 이미 전작 『대승은 끝났다』에서 지적한 바도 있지만 부처님의 근본 규제를 무시하고 심지어 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현재 (자신이 비구의 상태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각도 없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한국불교 교단에 ‘(각자 양심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포살본에서 부처님이 규정한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