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1부 황태자 교육 : 1901년(메이지 34-1921년(다이쇼 10
1장 소년과 가족, 메이지의 유산
2장 천황 기르기
3장 현실 세계와 마주치다
2부 인애의 정치 : 1922년(다이쇼 11-1930년(쇼와 5
4장 섭정 시절과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위기
5장 새 군주, 새로운 국가주의
6장 정치적 군주의 대두
3부 폐하의 전쟁 : 1931년(쇼와 6년-1945년(쇼와 20년
7장 만주사변
8장 쇼와 유신과 통제
9장 성전(聖戰
10장 수렁에 빠진 전쟁, 그리고 확전
11장 진주만의 서곡
12장 대원수의 시련
13장 뒤늦은 항복
4부 반성 없는 생애 : 1945년(쇼와 20년-1989년(쇼와 64년
14장 재발명된 군주제
15장 도쿄재판
16장 제왕의 신비감을 회복하다
17장 평온한 노년과 쇼와의 유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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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히로히토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히로히토(裕仁, 1901-1989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일반인의 앎 속에 그는 124대 일본 천황이자, 1926년부터 집권해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무조건항복 선언을 한 인물로 남아 있다. 또 강경한 우익 성향의 군부가 주도했던 태평양전쟁에서 허수아비 역할을 했고, 종전 후에는 상징적 지위에 머물면서 심지어 평화를 설파했던 것으로까지 기억된다. 히로히토라는 이름은, 태평양전쟁과 일제 강점기가 거론될 때 총독부, 일본 우익, 군부, 가미카제 특공대 같은 명칭들이 나온 뒤 한참 후에나 따라오곤 했다. 일본 본토와 우방인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늘 어딘가 불편한 관계였던 한국과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조차도 히로히토가 일본제국의 잔악한 현대사와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다는 제대로 된 비난이나 논의는 나온 적이 없다. 곧 히로히토에게는 늘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졌던 셈이다.
신간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은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뒤엎는 책이다. 물경 9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허버트 빅스는, 일왕 히로히토가 태어날 때부터 전제군주로 길러졌고, 태평양전쟁에서도 누구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전쟁 책임 문제에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입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히토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공세, 학살은 물론이고, 미국에 맞선 전쟁에서는 전진과 후퇴와 같은 소소한 전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항을 장악하고 통제한 사실상의 전쟁 지도자였다.
종전 후 일본 우익과 미국은 암묵적 공조 속에 히로히토에게 유약하고 유명무실한 천황이라는 가면을 씌워 태평양전쟁에서 히로히토라는 이름을 없애려 했지만, 그는 냉혹하고 잔인한 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기소조차도 한 번 받지 않고 아흔 살이 가깝도록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진단이다. 『히로히토 평전, 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