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실록, 1905
100여 년 전의 독도는 강치의 천국이었다. 바다사자 종류의 이 강치를 탐냈던 일본 한 어부의 집요한 노력이 마침내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저들은 독도에 일본 이름 다케시마를 붙여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1904년에 시작해 이듬해인 1905년에 벌어진 일이다.
책은 두 사람에게 주목한다. 독도의 강치를 탐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하자는 청원서를 낸 일본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가 먼저다. 그러나 책의 중점은 민간인 어부의 청원에 담긴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본 당시 일 외무성 정무국장 야마자 엔지로에 놓여 있다.
야마자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대륙을 향한 제국주의적 팽창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임에도, 매우 의아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그 이름이 낯설다. 그는 조금 수식을 보탠다면, 독도를 비롯한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대륙진출의 ‘원인’이자 ‘결과’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후쿠오카 태생의 주먹질을 잘 했던 수재 야마자는 일본 최고의 학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외교관의 길을 택해 첫 임지로 부산에 부임한다. 이어 조선 정부에게 “한반도의 새를 사냥하고 싶다”면서 위장해 한반도 강점에 가장 필수적인 철로, 서울~부산 사이의 경부선 부설의 측량작업을 주도했다.
10년 뒤 야마자는 일 외무성의 핵심 자리인 정무국장에 오른다. 그를 찾아온 일본의 어부가 독도 강치잡이를 독점하려 했던 나카이 요자부로다. 나카이는 여러 번 독도의 일본 영토편입 가능성을 일본 정부에 문의했지만 좌절한다. 내무성과 해군 수로부의 의견이 다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강점과 대륙진출의 거대한 음모와 야욕에 불탔던 일 외무성 정무국장 야마자를 만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한 번 해 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야마자는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 영국과의 동맹결성을 추진했고, 아울러 그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