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주려고 하고, 특히 열정적이지만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신념에서 그러는 것은 좌절과 파멸의 씨앗을 뿌리는 짓이다.”
1969년 미국 연방정부의 야망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즈음에 모이니핸Daniel P. Moynihan 상원의원은 이렇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정부는 더 비대해졌다. 이것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구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갈수록 더 많은 것을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결과적으로 신뢰를 잃어갔다. 1960년대 중반은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이후 정부들은 많은 짐을 짊어지고도 사랑받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신의 발전을 위해 투자할 돈도 시간도 없이 늙어갔다. 1960년대는 또한 이들 국가에서 공공부문이 민간부문과 어깨를 겨룰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영국의 경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가 소득의 절반이 공공 지출에 쓰이고 노동력의 약 3분의 1이 공공부문에 종사했으며, 일찍이 분별이 있고 법을 지킨다면 우체국과 경찰관 외에는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도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영국인은 국가와 부딪치지 않고는 이사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복지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긴 호황 속에서 불만에 찬 작은 집단들 속으로 후퇴했던 포퓰리즘이 다시 전면으로 나섰다. 여러 가지가 이를 부추겼는데, 특히 세계경제를 결딴내고도 구제받은 은행가들 같은 세계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컸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네 번이나 총리를 해야 한다고 이탈리아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로 브렉시트Brexit에 찬성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을 접수했다. 이후 포퓰리즘 영향은 세계무대에서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물론 서구 정부의 쇠퇴가 근래의 포퓰리즘 정치인들 탓만은 아니다-그들의 전임자들도 정부를 개선하기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연예계에 남아 있